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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괜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위해 / 이승윤

등록 2016-07-27 19:32수정 2016-07-27 19:49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현대차의 2016년 1분기 시가총액은 약 29조3천억원이다.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23조6천억원 정도다. 그런데 네이버의 직원 수는 2천명 정도로 현대차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듯 인터넷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고용이 늘고 있는 도소매, 음식, 숙박업 등은 어떠한가? 이들 일자리의 지난 몇 년간 임금 수준을 보면 감소하거나 미미하게 변하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기 때문인데, 그렇다 보니 고용과 사회보장의 측면에서도 불안정한 취업자들이 다수다. 더욱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년 알바’의 비중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최근 “빚이 있어야 학생들이 파이팅을 한다”는 망언을 했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파이팅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이 나라에는 이미 너무 많은 상태다. 이렇게 고용률과 임금상승률이 둔화되는 가운데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중은 증가하고 있는 게 오늘날 일자리의 핵심적 특징이다. 잘나가는 기업에서는 일자리가 늘지 않고, 늘고 있는 것은 대체로 나쁜 일자리인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런 흐름은 기존의 소득보장정책에 대한 근본적 개편을 고민케 한다. 매년 15조원이 투자되고 있는 일자리창출정책, 청년직업훈련정책, 그리고 ‘일하는 사람의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고용 전제의 소득보장정책에 대한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이제 기본소득을 담론이 아닌 정책적 차원에서 본격 고민해야 한다. 지식 기반이든 미래 신산업 기반이든, 성장에 기반한 고용창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곧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삶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는 이미 왔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산업들은 고용창출 효과가 크게 없고, 매력적이지 않은 일들은 직업훈련에 대한 투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완전히 재구조화될 노동시장과 이에 정합하는 새로운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최근 서울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열리고 정치권과 정부 등 각계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은 이런 자각의 자연스러운 반영인지 모른다. 기본소득은 세 가지 기본원칙이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자산조사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고용과 무관하게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소득을 사회안전망 체계 안으로 도입할 경우, 반드시 고려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복지서비스와의 관계이다. 의료, 교육, 보육과 같은 복지서비스는 현금이 아닌 현물 방식으로 보편적이고도 양질로, 그리고 국가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본소득의 원칙에 정합하면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국민의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 둘째는, 사회보험과 같은 기존의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어떻게 상보하는가이다. 기본소득이 궁극적으로 생애 전반에 걸쳐 ‘괜찮은 수준’으로 지급될 수 있을 때까지 단계적으로 도입될 필요가 있다. 완전히 새로운 제도가 제한된 시간 안에 갑자기 도입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같이 일부 지역의 사례를 통해 그 효과를 평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먼저 청년, 노인 등 기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집중되어 있는 대상부터,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같은 다른 복지급여 수준을 참고하여 기본소득의 수준을 ‘괜찮은 수준’으로 점차 높여가는 설계도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구상해야 한다. 미래의 새로워질 산업구조에 대해 경이감을 가지고 기대하는 만큼이나 이제 새로운 소득보장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도입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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