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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다수가 반대하면 고쳐야죠, 법은 불완전하니까

등록 2016-07-29 19:03수정 2016-10-04 14:25

[토요판] 하나와 진이의 갈등 속으로
(3) 용산경마장 반대운동 3년
김광진 전 의원(오른쪽)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청파로 용산화상경마장 옆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를 방문해 정방 공동대표(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김광진 전 의원(오른쪽)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청파로 용산화상경마장 옆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를 방문해 정방 공동대표(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2일 오전 11시40분, 서울 용산역 주차장 건물 앞 작은 천막. 오전인데도 안으로 들어서자 후텁지근한 기운이 끼쳐옵니다.

볕은 잘 들지 않았지만 마치 비닐하우스 안처럼 더운 열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만이 홀로 더위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3년 전 천막이 세워질 때, 천막이 세번 무너지고 다시 지어질 때쯤이면 이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얼마나 튼튼하게 천막을 지었는지 3년이 넘도록 첫번째 천막이 그대로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3년의 시간, 봄여름가을겨울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밝혔던 트리 장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지난겨울 냉장고에 붙인 듯한 안내문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천막 안에 두면 물이 얼어버립니다. 꼭 물은 냉장고 안에 넣어주세요.’

이곳은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대책위) 천막입니다. ‘도박장반대운동 1177일, 천막노숙농성 913일’이라는 천막 앞 숫자가 말하듯 3년이 넘는 긴 싸움의 거점이며,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근 학교 ‘삭제’ 뒤 승인 신청

전남 순천에서 8년 넘게 지속된 화상경마장 입점반대운동을 지켜봐왔던 사람으로서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 금방 끝나는 싸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주민들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왔으니 뭔가 바로 해결되리라 기대하셨던 주민들의 의아한 표정이 기억납니다. 3년이 지난 뒤 대책위의 정방 공동대표를 만났습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은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으로 자랐고, 평범한 주부는 이제 용산지역을 대표하는 활동가가 됐습니다.

“처음부터 1000일을 넘을 줄 알았다면 대표를 맡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하루하루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와 역할이 몸에 베어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대책위가 꾸려지던 날 공동대표가 됐거든요. 남편은 ‘좋은 일이니 동참하는 건 좋은데 꼭 대표까지 해야 하나’라고 얘길 했어요. 어쩌다 보니 ‘입점저지운동’부터 지금의 ‘도박장추방운동’까지 줄곧 공동대표를 맡고 있네요.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화상경마장’ 얘기를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리나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도박을 허용하고, 개인이 아닌 국가가 운영하는 도박장은 용인하고 있습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 따른 사행산업은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스포츠토토, 투우를 일컫습니다. 이 중 경마는 직접 말이 경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권을 구입해 내기를 하는 장내발매소(경기 과천, 제주, 부산)와 객장에서 화면으로 내기를 할 수 있는 장외발매소(전국 30곳)로 나뉩니다. 이 장외발매소가 화상경마장입니다.

경기가 열리는 경마장 모두에 베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외발매소는 유희나 오락보다는 투기, 도박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장외발매소 이용자의 1인당 연간 지출 금액이 경마장 본장의 978만원보다 20%가량 많은 1186만원 수준입니다. 사행성이 더 심하죠. 또 장외발매소 이용자의 도박중독 유병률이 카지노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인 54%입니다.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연간 78조원) 중 상당한 부분이 장외발매소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용산경마장 반대운동 3년 전 인연
한여름 용산 천막농성장을 찾다
평범한 주부를 운동가로 만든 세월

학교보건법 200m 조항 비웃듯이
인근 학교서 215m 거리에 경마장

비상식적 법률 탓에 입점 못 막아
마사회법 주민의견 수렴 조항 없어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 현행 법률
정방 대책위 대표 “주민 설득 없는
정부 일방적 횡포에 계속 맞설 것”

물론 전국 30곳에 들어선 화상경마장이 불법시설물은 아닙니다. 용산지역의 화상경마장 또한 건축물과 관련한 심의를 받았고 용산구청의 사용허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승인, 이사회와 정부 승인까지 났습니다. 심지어 그 운영 주체가 이익을 추구하는 사익집단이 아닌 마사회라는 공공기관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1000일이 넘도록 화상경마장을 반대하고 있을까요?

“학교의 학습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학교보건법(5조)에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을 설정하도록 돼 있거든요. 학교경계선으로 200m까지는 유해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죠. 그런데 보시는 것처럼 화상경마장 건물과 인근 성심여자중학교는 215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경마장 안에서 학교가 보일 정도예요. 200m로 규정한 정화구역 밖이라 합법이라고 마사회는 말합니다. 등하교 때 아이들이 지나는 길인데 200m까지는 안 되고 215m는 괜찮다는 게 정상적인 건가요? 200m 안에는 당구장, 피시(PC)방, 만홧가게, 노래연습장, 비디오방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천명이 입장하고, 수천평이나 되는 화상경마장의 학교와의 거리 기준도 똑같이 200m라는 게 저는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난 19대 때 화상경마장과 학교의 최소 거리를 500m에서 최대 2㎞까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개정법률안이 5건이나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헌법의 행복추구권, 생활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법은 형평에 맞아야 하며 애초 학교보건법의 입법 취지에도 부합해야 합니다. 현행법이라는 규정만을 내세워 국가기관이 이것을 밀어붙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정 대표는 말합니다.

이곳 장외발매소는 2700명이 입장하던 용산구 한강로의 발매소 규모를 2.3배 늘려서 확장한 곳입니다. 마사회가 2010년 2월28일 농식품부에 제출한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 승인신청서를 보면, 현 화상경마장의 위치를 ‘최적지’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마사회는 ‘반경 200m 이내에 유치원을 포함한 교육시설이 없어 학교환경정화구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불과 215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심여중·고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또 마사회가 별지에 첨부한 주변 지도에는 성심여중·고가 아예 빠졌습니다. 이전 승인을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성심여중·고를 지도상에서 삭제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입니다. 마사회가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구분 경계가 명확한 지역으로 민원 발생 개연성이 없다’고 둘러대기 위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 셈입니다.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의 농성 천막 옆으로 용산화상경마장 입구가 보인다. 경마장은 인근 성심여중·고와 215m 거리에 위치해 있다.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의 농성 천막 옆으로 용산화상경마장 입구가 보인다. 경마장은 인근 성심여중·고와 215m 거리에 위치해 있다.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비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 지낼 것”

용산장외발매소 이전이 승인된 건 2009년, 건물 사용승인이 난 건 2012년입니다. 4년 다 되도록 주민들은 화상경마장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마사회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시행사가 건축 인허가를 받아서 준공하면 마사회가 매입하는 조건으로 2009년 11월에 계약을 맺은 탓에 25층 건물이 들어서는 동안 주민들은 일반 상업건물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할 용산구청도 주민들의 편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2010년 6월, 자신의 임기 마지막날에 건축허가를 내줬고, 성장현 현 용산구청장은 2012년에 건축물 사용승인을 내주고도 과장이 전결한 것이라며 화상경마도박장인 사실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마사회가 공기업이니 감시·감독만 잘하면 될까요? 상위기관인 농식품부는 마사회 편들기에 급급했죠. 2009년 3월에 만든 ‘마사회 장외발매소 개설 승인절차 및 요건에 관한 지침’에 따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화상경마장 개설에 대해 사전협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이 또한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2008년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을 통해 장외발매소 신설을 금지하고 장외발매소의 매출 비율이 전체의 50%를 넘지 않도록 하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장외발매소 매출 비중은 아직도 전체 매출의 70%가 넘습니다. 화상경마장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축소해야 한다는 원칙도 정했지만 용산 화상경마장 설치는 묵인했습니다.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합니다.

그렇다면 국회는 이들에게 힘이 되었을까요? “이 싸움을 하면서 가장 희망을 가졌을 때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예요. 다수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이 저희 얘길 듣고 농식품부와 마사회 관계자를 불러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등 ‘뭔가 달라지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죠. 물론 희망은 희망일 뿐이었죠. 그날 이후 실제 달라진 것은 없어요.” 정 대표의 말을 전직 국회의원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한때 법을 만든 사람으로서 현행 법률을 찾아봤습니다. 마사회법에는 마사회가 장외발매소를 설치·이전하는 경우에는 농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지역주민의 의견수렴에 관한 사항은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농식품부 지침(장외발매소 개설 승인절차 및 요건에 관한 지침)엔 ‘지자체 및 지역주민의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명시돼 있습니다만, 그 지침마저도 용산과 같이 동일 지역 내 이전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합니다. 최근 사업이 철회되거나 무산된 순천 및 서초 장외발매소나 용산 화상경마장의 경우처럼 지역주민과의 갈등으로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 승인 전에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강제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합니다.

“예전에는 지나는 길에 시위를 하는 분이 있으면 그냥 스치듯 지나쳤어요. 그런데 요즘은 누군가 서 있으면 지나가면서 말도 붙이고, 응원도 한마디 남기고 누가 전단지를 나누어 줘도 꼭 받아서 옵니다. 그 자체로도 힘이 된다는 걸 아니까요.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도 ‘왜 국가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들을 미리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국가가 하는 일이 옳은 것이라면 주민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는 거 잖아요? 주민 몰래 논의하고 결정해서는 폭탄 터트리듯 공표하는 건 용산이나 성주나 마찬가지예요.”

지역주민들과 지역 종교인,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점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5월31일, 입점이 이뤄졌습니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지기만 한 건 아닙니다. 마사회는 애초 계획보다 축소된 화상경마장을 운영하고 있고 주민들 반대에 손님도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 대표는 이 싸움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성심여중 교장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고.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 지낸다고.”

국회는 입법청원서에 답하라

지난 18일 성심여중·고 학생과 학부모 1570명은 국회 정론관에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을 위한 4개의 법률개정안의 입법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학교보건법상 정화구역을 500m로 넓히고 여기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교육감이나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습과 학교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화상경마장 설치를 허용하자는 등의 내용입니다. 지역이기주의를 의미하는 님비 아니냐고요? 님비는 꼭 필요한 시설인데 내 집 앞에 세우지 말라고 할 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화상경마장은 꼭 필요한 시설이 아닙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계획처럼 줄여나가야 할 시설일 뿐입니다.

오늘도 대한민국 곳곳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1인시위에 나서고, 천막농성을 하고, 전단지를 나눠 주고, 문화제를 열고,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퇴근길에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그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고 피켓을 든 과격한 사람들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법으로 해결하면 될 일인데 왜 저렇게 억지를 부릴까 하는 생각도 하실 겁니다.

‘악법도 법인가’라는 논쟁은 인간이 규율을 만들면서부터 수천년째 내려오는 화두입니다. 조금 질문을 바꾸어서 ‘법은 완전한가?’라고 묻는다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법이 완전하다면 국회의원들은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동의되었던 법일지라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수정하거나 새로 만들고, 또다시 변경하는 일들을 반복해야 합니다. 법은 완벽하지 않고 세상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요구를 제때에 국회가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회의 직무유기일 것입니다.

김광진 전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 눈물 깃든 현장이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갈등 공간이 전국에서 부스럼처럼 솟아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갈등이 오래 묵어 삶을 곪게 하는 사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씨가 갈등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를 경험한 두 전직 의원이 현장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며 현직 국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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