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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IMF 때 적용했던 법조항을 계속 놔둬야 하나요

등록 2016-09-30 19:21수정 2016-10-04 14:27

[토요판] 하나와 진이의 갈등 속으로
(7) 국내 최장기 해고무효 싸움 10년
▶ 눈물 깃든 현장이 도처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갈등 공간이 전국에서 부스럼처럼 솟아 가라앉지 않습니다. 해법을 찾지 못한 갈등이 오래 묵어 삶을 곪게 하는 사태는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장하나·김광진씨가 갈등의 현장을 찾아갑니다. 청년 비례대표로 정치를 경험한 두 전직 의원이 현장 속에서 정치를 성찰하며 현직 국회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46년 전 스물세살의 청년이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스스로 산화하며 한국 사회에 외친 말입니다. 복지라는 말은 꺼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밤을 낮 삼아 일하고 최소한 숨만 좀 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마저 쉽게 하지 못하던 시절.

그 시절은 한 청년의 분신으로 끝이 났어야 했지만 세계 11대 경제강국인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끊이지 않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46년 전에는 못 배우고 가난했던 청년의 외침이 전 국민의 가슴에 파장을 일으켰으나, 요즘은 파업·해고·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날마다 신문 지면에 가득한데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의 목숨이 아닌 단순한 숫자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살자’는 외침은 어느새 공허한 메아리가 된 걸까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250여명(노조 추산)의 콜트·콜텍 해고자 가운데 복직한 이는 한 명도 없다. 지난 9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가 국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250여명(노조 추산)의 콜트·콜텍 해고자 가운데 복직한 이는 한 명도 없다. 지난 9월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가 국회의 관심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딴생각한다고 창문도 없던 공장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사거리에는 9월30일을 기준으로 362일째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을 하는 콜트·콜텍의 해고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막말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투쟁의 공간을 여의도로 옮긴 것은 1년여 전이지만, 사실 그들의 싸움은 무려 350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장장 10년의 세월. 도대체 왜 이 긴 시간 동안 무엇을 위해 이 아스팔트 위에 머물고 있는 걸까요? 지난 23일 이인근 금속노조 콜트·콜텍 지회장을 찾아갔습니다.

‘행정대집행’.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집회 천막은 늘 위태롭습니다. 공권력이 마음을 먹으면 법의 이름으로 철거할 수 있지요. 이곳의 상황은 어떤지부터 물었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주차장 부지여서 토지점용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대신 꼬박꼬박 하루치의 주차료를 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주차 관리인분이 주차료를 안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대신 이제는 좀 나가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주시긴 합니다. 구청에서도 철거에 대한 계고장이 오기는 했는데 크게 신경 쓰일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남들에게 피해 안 주도록 해야지요.”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도중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한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만 골몰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은 사례가 많다”며 콜트·콜텍을 비난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서는 3만달러 시대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강경노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노조는 허위사실 유포로 김 전 대표를 고발했고 서울남부지법은 올해 7월 김 전 대표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공식사과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10%에 불과한 노조가 파업을 일삼으면서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고 말하던 김 전 대표는 지난 8월26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으로 국회 정론관에 나타나 준비된 사과문을 낭독했습니다. 그의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 있었을까요. 이 지회장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3500일 넘은 콜트·콜텍 농성장
2006년 산재에 노조가 노동부 진정
회사는 부당해고와 공장 해외 ‘먹튀’
전기 못 끌어 선풍기 없이 난 여름
“더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무관심”

고법 “순이익 내던 회사 부당 해고”
그러나 대법은 회사 쪽 손들어줘
근로기준법 24조 “경영상의 필요”로
해고요건 정했지만 자의적 해석 많아
IMF때 법 지금까지 필요한지 의문

“단순히 법원의 결정에 따른 사과인지 김 전 대표의 노조관에 변화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죠. 전자 아닐까요? 하하. 다만 김 전 대표가 이번 일로 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 다음으로 노조조직률이 낮은 것인지, 왜 노동자의 10%밖에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조합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는 비정규직과 청년 노동자의 삶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면 헛된 기대일까요?”

김 전 대표의 사과를 받았지만 콜트·콜텍 노조는 지금도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농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 발언 당시 새누리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했어요. 사과는 대표직을 그만둔 김무성 의원의 개인적 발언에 불과합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공식 사과와 함께 국회 차원의 사태 해결 노력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는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인천에서 전자기타를 생산하는 콜트악기와 대전에서 통기타를 생산하는 콜텍악기는 같은 업체였습니다. 모두 ‘Cort’(콜트)라는 브랜드로 통합니다. 1973년 성수동에서 자본금 200만원으로 사업을 개시한 이래 인천과 대전 공장, 인도네시아, 중국 등 6개 법인으로 확장해, 세계 악기 시장 점유율 30%였던 회사였습니다. 2007년 노동자들을 해고할 당시 대표이사 박영호는 한국 부자 순위 120위, 확인된 재산만 1191억원이었습니다.

콜트악기는 1996년부터 회사가 국내 공장을 폐쇄하기 직전인 2007년까지 해마다 50억원에서 100억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었고, 부채비율은 동종 업종의 평균치가 2006년 기준으로 168%인 것과 달리 30%밖에 되지 않을 만큼 재무구조 또한 안정적인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쪽은 경영난을 이유로 느닷없이 2007년 자회사인 콜텍 노동자 67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위장폐업해버린 데 이어, 이듬해 콜트악기마저 위장폐업했습니다.

콜트·콜텍 ‘먹튀’는 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상식적인 외침에서 비롯됐습니다. 나무를 깎고 붙이는 기타 제조업체인 콜트·콜텍 공장에는 당시에 창문이 없었다고 합니다. 작업 중 딴생각을 못 하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네요. 이 때문에 노동자의 몸은 고스란히 공장 안 분진이나 접착제 냄새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지요. 결국 2006년 5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를 입었습니다.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 16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 회사는 노조가 요구한 작업환경 개선이나 복직 등이 아닌 공장 폐쇄와 폐업으로 답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몇 년에 걸쳐 공장 해외이전을 준비하며 이미 기술이전을 마친 상태였지요. 외국 자본이었다면 먹튀라 말할 수 있는 절차를 착실히 밟아나간 것이지요.

근로기준법 24조는 아직도 필요한가

이 지회장은 지난 10년간 변변한 벌이를 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직장을 잡는 순간 해고노동자의 싸움을 포기하는 게 되니까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어요. 당연히 생활을 꾸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죠. 만약 복직이 되더라도 정년까지 얼마 안 남았거든요. 그래도 정년은 내 회사에서 하고 싶어요.” 아스팔트 위를 거처로 삼은 그에게 남들과 같은 평범한 황혼에 대한 갈망은 싸움의 작은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임금지급 청구 등 관련 행정·민사소송이 하도 많아 일일이 소개하긴 어렵습니다. 상징적인 장면만 보겠습니다. 2012년 2월 대법원은 콜트·콜텍 노동자 정리해고 사건에 엇갈린 판결을 내놨습니다. 이상훈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콜트 쪽 해고 노동자 사건에선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당시 회사 상황이 노동자를 집단으로 자를 만큼 어렵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회사는 석 달 뒤인 그해 5월 “폐업으로 노동자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며 콜트 노동자들을 다시 해고했습니다.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을 거쳐 서울고법에서 다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콜트 판결을 한 같은 날 안대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콜텍 노동자 24명 사건에선 다른 결론이 나왔거든요. 해고가 위법이라는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낸 거죠. 안 대법관은 이날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사정을 인정할 수 있다면, 해당 사업부문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아 불합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유명한 법리를 내놓았죠. 기업들이 지금은 경영 상태가 정리해고할 정도로 긴박하지 않더라도 조만간 악화할 것 같은 경우 노동자를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을 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서울고법을 거쳐 2014년 6월 대법원에서 결국 해고가 확정됐습니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있는 콜트·콜텍 공장은 여전히 기타를 만들어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습니다. 2012년까지 이어진 250여명(노조 추산)의 해고자 가운데 복직한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한때 법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으로서 좋은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기가 지나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법을 빨리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더불어 그 법리를 판단하는 사법부도 광의의 해석이 아닌 입법 취지에 맞는 판단을 해야 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지금 쟁점이 되는 근로기준법(24조 1항)의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시기를 겪으면서 기업의 전면적인 구조조정과 기업의 인수·합병·양도 등이 증가할 때 적용됐던 법 조항입니다. 이미 사내유보금을 수백조원 쌓아두고 있는 현실에서 이 조항이 지속될 필요가 있을까요. 또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고 하는 단어의 해석은 온전히 사쪽에서 결정하도록 돼 있으니 이는 사실상 회사의 판단에 따라 해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돼 왔습니다. 실제 매년 수십억원의 흑자를 내온 콜트·콜텍은 어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인해서 직원을 해고했는지에 대해서 답을 못했지만, 법은 그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선풍기 한 번 제대로 못 튼 여름

이제 찬바람이 부니 금방 잊혔지만 천막의 여름은 타는 듯 더웠다고 이 지회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주위에 전기를 끌어다 쓸 곳이 없거든요. 꼭 필요할 때만 발전기를 돌리는 환경에서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 한 번 제대로 틀지 못했죠. 말도 못하죠. 허허.” 그런 고난을 경험하지 못한 제가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인적인 더위보다 저희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콜트·콜텍이 잊혀 간다는 생각이 들 때예요. 사람을 살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잖아요.”

10년이라는 긴 싸움이 될 줄 알았느냐고, 앞으로는 또 얼마나 더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고, 이 싸움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고 아프게 물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지만 복직투쟁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어요. 알았다면 선뜻 시작 못 했겠지요.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 여기서 싸움을 접으면 회사를 망하게 한 파렴치범으로 남을 테고 사장은 승자가 돼 부와 명예를 계속 누리지 않을까요?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게 힘이 듭니다.”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며 그의 싸움에 우리가 힘이 돼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가 어서 소소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전직 의원인 저는 바랐습니다.

김광진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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