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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놀 권리 / 박순빈

등록 2016-07-31 16:54수정 2016-07-31 19:05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는 ‘아동은 휴식을 충분히 즐기고,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교육 현장은 이런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어린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이 7월 말 마련한 어린이 옹호 활동가 캠프에 참석한 서울 초등학생들이 조희연 교육감을 찾아가 ‘어린이 놀 권리 정책 제안’을 전달했다고 한다. 핵심은 놀 시간과 놀 수 있는 공간을 늘려 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놀이에 목말라 있다. 놀지 못하고 놀 수도 없는 아이들은 우리의 암담한 미래다.

인간에게 놀이는 인성과 지성 발달의 결정적 요인이다.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인류 문명에서 ‘호모 루덴스’(노는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놀이를 통해 사회는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드러낸다”고 간파했다. 놀이는 단지 수단이라기보다 사회적 인간의 목적으로 봐야 한다는 철학자도 있다. 장폴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게 이해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을 때, 그는 놀이를 한다”고 말했다.

놀이의 결핍은 창의력의 부족을 낳는다. 인지과학계의 여러 주장들에 따르면, 인간의 창조행위는 자신을 완성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다. 자신에게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도구를 제작하고, 다른 무리의 도움을 얻으려고 놀이를 배운다는 것이다. 노는 동안의 여유와 사색은 창조적 과정의 기본요소인 이해, 통찰, 상상의 온상이다.

디지털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 개별 인간의 단순한 지식 축적은 큰 의미가 없다. 1등만 하겠다는 인간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을 많이 길러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문화융성이나 창조경제의 시작은 미래 세대의 놀 권리 보장이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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