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바람 한 점 없는 불볕더위로 도로는 가마솥처럼 끓어올랐다.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는 달걀도 익힐 기세였다. 등줄기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노동자들의 행렬을 따라 걸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현대, 기아, 현대제철…. 정부와 언론한테 ‘귀족노조’로 비난받는 노조원들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놔두고 뙤약볕 아래 모였다. 정규직만이 아니다. 부품사와 비정규 노동자들이 현대차그룹을 향해 금속노조와 교섭에 나오라고 외친다. 7월22일 1만5천명이 모인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풍경이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대·기아차의 고액 연봉이 온전히 조합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2·3차 협력업체의 노력이 더해진 것인지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파업이 청년의 취업을 뺏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맹비난했다. 현대차 평균 연봉이 9천만원이 넘는다. 자녀 셋 대학등록금과 가족 병원비도 지원받는다. 유럽과 달리 교육과 의료, 노후를 책임지지 않는 나라, 노조가 회사와 싸워 따낸 성과다. 노동자가 연봉 1억을 받으면 안 되는가? 취업준비생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이 현대차인 이유도 높은 연봉과 고용안정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현대차 정규직은 조합비와 각종 기금으로 비정규직과 연대한다. 하청노동자를 이토록 걱정하는 장관은 자기 월급 떼서 노동부 비정규직을 위해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기권 장관은 정규직 임금 인상 때문에 2·3차 협력업체가 신규채용을 못 한다고 힐난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납품단가 조사에 따르면 61.7%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정부에 ‘납품단가 반영 실태조사’(25.3%)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처벌 강화’(25.0%)를 요구했다. 이래도 ‘귀족노조’ 때문인가? 장관은 대기업 임금 동결로 납품단가를 인상하고 채용을 늘린 사례가 있으면 말해보라. 임금 인상을 자제한 돈은 정몽구 일가 금고에 쌓일 뿐이다. 설령 납품단가가 오르더라도 부품사 사장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장관만 모르는 모양이다. 정부는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10%를 협력업체 처우 개선에 사용한 에스케이하이닉스처럼 하라고 훈계한다. 그런데 에스케이하이닉스의 협력업체는 부품사가 아닌 사내하청이다. 10년 전 정부가 합법 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근로라고 판정했다. 5천명의 사내하청은 정규직 월급 떼서 도와줘야 할 불우이웃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는 뜻이다. 현대차 박유기 지부장은 “납품단가를 어떻게 후려치는지, 부품사 노사관계를 어떻게 지배·개입하는지 실상을 산업별 교섭에서 확인하고 바로잡자고 했지만 현대차그룹에서 ‘쌩’깠다”며 장관은 뭘 하느냐고 반박했다.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산업별 교섭을 법제화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사가 한자리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자는 것이다. 중견기업연구원 보고서의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을 보면, 산별교섭을 하고 있는 독일(73.9%), 영국(85.3%), 프랑스(90.0%)가 한국(52.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최저임금을 쥐꼬리만큼 올려놓고, 노동의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산별교섭은 외면하면서, 정규직이 양보하면 비정규직이 살 만한 세상이 되는 양 대기업노조 비난만 일삼는 사람이 노동장관인 나라. 노동자는 불행하다. ‘상시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불법파견 특별근로감독 및 직접고용 명령’이라는 박근혜 후보 노동공약,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경제민주화’라는 경제공약을 지키면 장관의 걱정은 사라진다. 대통령 공약은 중허지 않은가? 이기권 장관은 뭣이 중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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