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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다시 보는 맥아더/ 김이택

등록 2016-08-03 18:18수정 2017-08-02 16:21

인천 앞바다에 인접한 자유공원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기념해 1957년 세웠다. 맥아더는 미군 역사에서 드문 기록을 갖고 있다. 최연소 사단장에 최연소 육사 교장, 최연소 참모총장에다 30년 가까이 장군을 지낸 진기록도 세웠다.

소령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이래 수많은 전쟁에 복무했으며, 우리와는 인천상륙작전으로 깊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요즘 식으로 하면 ‘금수저’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필리핀 군정장관을 역임한 장군이었고 맥아더 역시 필리핀에서 아버지의 부관으로 근무했다. 아들 둘을 잃은 어머니는 셋째인 더글러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간 근처 최고급 호텔에 거처를 마련하고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대령 시절에는 육군장관에게 두 차례나 편지를 써서 “전장에서 이룩한 탁월한 성과를 고려해 달라”며 아들의 장군 진급을 직접 청탁할 정도였다. ‘마마보이’란 별명도 어머니의 치맛바람 때문이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맥아더는 “성공 확률이 1/5000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뚫고 작전을 감행해 패전의 위기를 뒤집은 ‘전쟁 영웅’으로 등장한다. 실제 1951년 해임 뒤 뉴욕에서 열린 퍼레이드에는 700만명이 환영 나올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상륙작전 ‘이후’의 전과는 치욕이었다. 만주 폭격 의지까지 불태우며 압록강까지 북진했다가 결국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한 책임을 추궁당해야 했다. 영화는 “정치인이 그린 줄 하나에 끝날 전쟁이 아니”라며 밀어붙이는 그의 군인정신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실제는 전쟁 중이던 1944년 등 두 차례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전력’ 탓에 대권 욕심 때문에 무리수를 뒀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평론가들이 영화에 낮은 평점을 줬다고 논란이 있으나 맥아더 묘사를 보면 높은 평점을 주긴 어렵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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