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8월2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500억원 이상 번 기업, 5억원 이상 소득이 있는 사람, 상속받거나 증여할 재산이 많은 사람, 집을 2채 이상 가지고 임대료를 받는 사람, 가족기업·공익법인을 탈세 수단으로 사용했던 사람들에게 세금을 좀 더 걷자는 내용을 포함했다. 사실 더불어민주당 세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 대부분은 새로울 것이 없는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임대소득 과세는 이미 원칙적 합의가 있었으며 실시 시기만 유예된 정책이다. 법인세 인상이나 초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 탈루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등은 그 당의 20대 총선 공약집에 담겨 있던 내용이다. 불과 몇 달 전 치른 총선에서 공약으로 약속했으니, 당선 후 이를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반면 정부도 7월28일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현 정부와 집권당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과세정책 기조를 그대로 담고 있는데, 20대 총선 결과를 수용하는 방향에서 2017년 예산안을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안은 내년 한 해 정부의 정책집행 총괄 계획서다. 20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든 것은, 지난 3년 집권당이 원내 과반 1당이었던 시절의 정책노선에 전환을 요구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전환할 것인가는 논의해서 결정하더라도, 적어도 방향타만은 새롭게 잡는 게 선거 결과에 대한 예의다. 개정안들은 2017년 세입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므로,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될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예산안과 세입예산안 부수법안이 11월30일까지 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12월1일 본회의에 원안 그대로 올라가게 된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협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부안과 더불어민주당안 혹은 야당안이 각각 본회의에 그대로 상정되고 표결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정부와 집권당은 여소야대 국회를 고려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억울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역지사지해봐야 한다. 2014년도 정기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야당은 담뱃값 인상을 ‘서민 증세’로 규정하고 반대를 천명했다. 하지만 원내 제1당이던 새누리당은 예산안 자동부의제도를 근거로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고, 야당은 정부 원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덕분에 19대 국회에서 야당은 담뱃값 인상을 반대했던 유권자들로부터 ‘무능한 야당’이라는 질타를 감수해야 했다. 2015년 정기국회에서는 누리과정 예산안이 문제가 되었다. 야당은 1조2천억원이 필요했던 누리과정 예산을 예산안에 포함시키고자 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거부했다. 결국 예비비에서 3천억원을 우회 지원하는 안으로 결론이 났다. 정부와 여당은 원내 과반이 넘는 1당의 지위를 충분히 누렸던 것이다. 입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입장을 바꾸어놓은 것은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면 20대 국회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2016년 정기국회 예산안 심의가 파행되면 그 효과는 훨씬 복잡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상 예산안 제출권은 정부에 독점되어 있다. 그런데 세입, 세출예산안 부수법안은 정부와 의원 모두 제출할 수 있다. 세입과 세출 관련 법안은 야당안이 채택되었는데 이를 반영해야 할 예산안은 정부안밖에 없다면,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정책계획과 재정계획이 어긋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정부·여당이 야당들과 예산안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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