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血稅)란 한자어는 일본에서 먼저 썼다. 메이지 정부가 1872년(메이지 5년) 징병령을 선포하면서 병역의무를 혈세라고 표현한 것이 뿌리다. 병역의무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직역해 썼다는 게 일본 학자들의 해석이다. 서일본 지역의 농민들은 징병령에 반대해 1874년 말까지 십여 차례 큰 봉기를 일으켰다. “피로써 나라에 보답하라”는 문구 때문에 사람의 피를 실제로 뽑아간다고 오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한다.
오늘날엔 뜻이 크게 변했다.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피가 맺히도록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내는 세금’, 또는 ‘가혹한 세금’이란 뜻으로 쓰인다. 병역의무란 뜻으로는 더는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 언론에 혈세란 단어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세무 공무원들의 비리가 수도 없이 적발된 1994년이었다. 그 뒤 외환위기를 거치며 국민이 훗날 낼 세금을 담보로 나라가 빚을 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혈세는 세금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래로 세금은 환영받는 것이 못 됐다. 가혹하게 세금을 걷어가는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공자는 일찍이 논평했다. 예수 시대에도 세리(세무 관리)는 백성의 저주와 배척을 받았다.
그러나 나라가 할 일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 대부분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다. 근대 의회주의는 권력의 자의적인 과세를 막기 위해 ‘대표가 없으면 과세도 없다’는 원칙의 수립과 함께 발전했다. 우리 헌법도 국민의 납세 의무를 규정하고,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59조)고 하고 있다.
‘귀중한 세금’을 제대로 써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공평 과세에 바탕을 둔 적정 규모의 세수 확보도 중요한 일이다. 혈세란 표현의 남발이 세금 자체에까지 더러운 옷을 입혀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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