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분단과 관음증 / 김성경

등록 2016-08-10 18:05수정 2016-08-10 19:20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약 1500여㎞에 이르는 국경지역이 존재한다. 군사분계선으로 인해 마치 섬과 같은 작은 땅에 갇힌 우리에게 이 광활한 지역의 문화는 생소하다. 이곳에 서면 북한은 고립된 곳이 아닐뿐더러, ‘국가’의 존재보다 사람들 사이의 접촉과 교류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 지역 주민들의 초국경적 삶을 살피는 것은 우리의 분단적 시각에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지만,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은 단순히 북한을 ‘구경’하러 이곳을 찾는다.

“버스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잡아요. 그래야 북한이 더 잘 보여요.” 접경지역 답사 경험이 많은 한 지인이 내게 건넨 조언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정부, 시민·종교 단체, 언론사 가릴 것 없이 북한(만)을 ‘구경’ 가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참가자를 유혹한다. 이번 기회에 기다란 망원렌즈를 장만했다는 사람도 있으니, 버스 안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것 정도는 나름 귀여운 궁여지책에 속한다. 도대체 무엇을 그다지도 보고 싶은지, 왜 그곳에 가는지, 그곳의 의미가 무엇인지와 같은 곤란한 질문은 사절이다. ‘평화’, ‘통일’, ‘민족’ 등과 같은 큰 이야기 뒤편에 숨겨진 우리들의 관음증적 욕망만 잘 숨기면 된다. 이는 식자층도 비슷하다. 잊을 만하면 신문 곳곳에 실리는 지도층 인사의 북-중 접경지역 답사기는 화려한 수사로 통일의 염원, 민족 동질성 회복, 일상에서의 평화 등을 담고 있지만, 대부분은 북한을 ‘훔쳐보며’ 우월감 혹은 안도감을 느끼거나, 저곳이 ‘우리 땅’이라는 정복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음증은 결국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관찰 대상의 삶은 훔쳐보는 자의 시선으로 재단된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상을 상대로 한 욕망은 음험하다. 벌거숭이산, 강가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압록강 물결을 타고 수송되는 목재 뭉치를 바라보며 우리는 때로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순진한 깨달음부터, 북한 주민의 생활환경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삶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제는 근거조차 희미해져 버린 다짐을 한다. 훔쳐보는 쾌락 앞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고민이나 그들 또한 그들만의 시선을 지닌 주체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는 없다. 관음증은 결국 말하지 못하고, 시선조차 거세당한 이들을 자기 멋대로 상상하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것이니까 말이다.

파탄 난 남북관계를 반영하듯 최근 정부는 이 지역을 여행 자제지역으로 선포하였고, 언론은 북한이 한국 여행객을 납치하려 한다는 경고를 흘려보낸다. 이제 이곳은 남과 북이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공포’와 ‘위험’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이에 몇몇은 권고를 따라 여행을 취소하고, 다른 몇몇은 북한을 ‘훔쳐보는 것’에 더하여 ‘첩보놀이’라는 또 다른 분단의 감정 앞에서 묘한 흥분을 느낀다. 이런 부류에게 그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자본과 중국 도시화 광풍으로 갈기갈기 찢긴 조선족 문화와 여전히 북쪽 사람들에 기대어 살아가는 국경지역의 주민들, 국가의 경계에 포획되지 않는 수많은 장소의 감각과 역사는 분단 관음증적 시각으로는 포착될 수 없다. 하긴 어차피 상관없다.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결코 국가의 경계 너머 어울려 살아가는 진정한 ‘접경적’ 문화는 아닐 터. 다만 ‘북한 훔쳐보기’에 중독되어 있는 우리들이 그 매끈한 입으로 ‘통일’과 ‘민족’을 되뇌는 것, 그것이 변태적일 뿐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계엄이 제대로 깨운, 국힘의 ‘민정당’ 유전자 [성한용 칼럼] 1.

계엄이 제대로 깨운, 국힘의 ‘민정당’ 유전자 [성한용 칼럼]

[사설]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2.

[사설] 윤석열 체포 방해는 ‘제2의 내란’이다

대국민 ‘관저 농성’과 경찰의 결기 [전국 프리즘] 3.

대국민 ‘관저 농성’과 경찰의 결기 [전국 프리즘]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신진욱의 시선] 4.

윤석열 아래 ‘악의 빙산’을 보라 [신진욱의 시선]

[사설] ‘8인 체제’ 이룬 헌재, ‘윤석열 탄핵’ 압도적 민심 새겨야 5.

[사설] ‘8인 체제’ 이룬 헌재, ‘윤석열 탄핵’ 압도적 민심 새겨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