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여해 강원용 목사(1917~2006)의 서거 10주년 추모행사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무엇보다 강 목사의 공헌은 집단 간에 ‘대화’를 할 줄 모르는 우리 사회에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었던 선각자로서 기억된다. 그의 활동의 정삼각형 꼭짓점은 진보적 설교 강단인 경동교회 담임목사,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으로서 활동이었다.
강원용 목사 10주기 추모설교집 < 돌들이 소리치리라 >
첫째, 설교가로서 강원용 목사의 메시지는 일반 보수적 기독교 교회 강단의 색깔과 달랐다. 그는 1950년대 전반기 미국 유학 시절 유니언신학교에서 세계적인 석학 라인홀드 니부어와 폴 틸리히를 만났다. 대석학들의 통찰을 배우고 그는 성경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단순히 설교 강단에서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과 상호관계 속에서 대화하고 변증하였다. 기독교와 세속화, 종교와 과학, 기독교와 마르크시즘, 기독교와 이웃 종교, 영성과 생태계 윤리 등을 긴장·갈등 속에서 새롭게 복음의 메시지로 조명하였다.
설교란 성경말씀, 시대적 상황, 그리고 신앙공동체 심령 그 삼자가 부딪히며 불꽃처럼 일으키는 특이한 ‘말씀의 사건’이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위신 추락과 위기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이 큰 이유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설교의 타락, 설교 내용의 비복음적 위기에서 온다. 강원용이 경동교회 강단에서 선포하였던 설교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이다.
둘째, 사회교육가로서 강원용의 선각자다운 활동은 1965년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전신인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설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동기에 소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군부독재 정권과 재야 비판적 정치세력, 기업권력과 노동권 운동세력, 여성인권운동과 가부장적 보수세력, 그리고 종교 간 갈등과 남북화해 협력 등등의 문제로 양극화가 첨예하여 대화와 소통이 절실하던 시기였다.
대화문화아카데미 운동은 본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사회의 불통과 황폐화를 극복하고 일어선 전후 독일의 ‘아카데미 운동’을 과감하게 우리 사회에 적응시킨 사회교육기구였다. 양극화는 곧바로 모두 공멸하는 비인간화로 치닫게 됨을 성찰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상대의 입장을 경청하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제3의 상생의 길’을 대화와 실험, 중간 지도자 양성을 통해 돌파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저명한 여성 지도자, 노동계 지도자, 정치계와 교육계와 예술계 지도자들이 크리스챤아카데미와 인연을 맺고 있다.
셋째, 강원용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조직된 이후, 진보적인 세계 교회지도자들의 집단지성의 목소리를 경직된 한국 사회에 전달하는 ‘헤르메스 목자’의 역할을 운명적으로 담당하였다. 남과 북은 지금까지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동굴에 갇힌 눈먼 노예집단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세계 교회지도자들은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광기성을 폭로하고 대화, 화해, 평화교류, 공생공영을 독려하고 실천에 옮기는 중간 화해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열었다. 종교의 사회윤리적 책임을 남달리 각성시켰다.
강원용의 신념이랄 수 있는 ‘크리스찬 리얼리즘’은 현실 속에서 복음은 관념적·이상적 기독교도 아니고 세속적·현실적 기독교도 아니라는 신념이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뚫고, 소위 ‘사이 너머’(Between-Beyond)의 제3의 길을 택한다. 정의 없는 사랑은 공허하고 사랑 없는 정의는 맹목적이다. 정부와 국민, 여당과 야당, 남한과 북한, 노동계와 기업계의 대화와 소통이 꽉 막혀버린 오늘의 상황에서 여해의 ‘대화와 소통’의 예술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