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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도둑맞은 책 / 손아람

등록 2016-08-24 17:54수정 2016-08-24 19:17

손아람
작가

남의 글로 성공한 영화 작가가 지하실에 감금된다. 범인은 그의 조수다. “이번에는 작가님이 제가 시키는 대로 써보세요. 각본에는 제 이름이 붙을 거고요. 혹시 압니까? 그게 더 나을지.” 조수의 명령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곧 깨닫는다. 정말로 더 나은 작품을 쓰고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자기 글에 애정을 느끼지만, 원고는 남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될 예정이다. 웹툰이자 연극인 <도둑맞은 책>의 지하실은 공동창작을 경험해본 예술가라면 섬뜩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지만 진짜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 조영남의 그림과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음악과 정치인들의 자서전이 그 지하실에서 쓰였다. 지금도 그 지하실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관리형 창작은 정말로 현대예술의 관행이 되었나? 콘셉트에 의한 지배는 외관일 뿐 실제로는 우리 세계에서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다. 창작은 언제나 권력이 지배한다. 나에게는 스무개 정도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가능만 했다면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을 진작에 내 지하실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훌륭한 콘셉트만 가졌다면 조수가 10만원을 던져주고 조영남에게 대작을 시켰을 거라 믿는 사람은 없다. “남들도 다 하니까” 그건 관행이 아니라 범죄가 만연한 사회 도둑의 항변에 가깝다. 관행이라면 왜 발각될 때까지 지하실에서 몰래 일을 벌여야만 하겠는가?

대작이 관행이라는 대담한 변명으로 비호되는 이유는 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성명표시권과 저작인격의 일신전속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그 전제조건인 ‘창작’의 범위를 정의하지 않는다. 예술의 기업화에 따른 공동창작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저작권의 발생을 결과적으로 판단한다. 논쟁은 이 빈틈에서 벌어진다. 저작권법이 확실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은 이렇다. 악상과 구상 등의 아이디어로 완성물 전체를 지배하는 권리가 발생하는가? 기예를 갖지 못한 감독형 창작자 역시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일정과 절차를 관리했을 뿐인 경영형 창작자도? 도제, 조수, 보조창작자 등 실무자의 부분적 저작인격은 아예 보호가치가 없는 것인가?

보조작가가 주요 작화를 담당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던 웹툰 <핑크레이디> 사건 이후로 만화계에서는 보조작가의 작화 영역을 함께 표기하는 관행이 자리잡아가는 추세다. 작화 정보가 전달된다면 수용자들은 관행적 용인이 가능한지, 작품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예술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데 정작 예술가들이 수용을 거부해온 관행이다. 그래서 입법적 보완이 시급하다.

공동창작자의 성명 표기 관행이 일찍이 자리잡은 영화계에서는 부문별 창작자들이 ‘몹쓸 흥행작’만큼이나 ‘망한 명작’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더 적은 돈을 받더라도 더 좋은 작품에 참여하길 열망한다. 훌륭한 영화감독들이 적은 예산으로 화려한 위용의 제작진을 거느릴 수 있는 건 그들이 타인의 경제관념을 마비시키는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력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문화 덕택이다. 이름을 보호할 가치가 바로 그런 것이다. 반대로 경제적 대가로 이름을 매수하도록 방치된 예술 분야에서는? ‘그 작품 사실 내 건데’라고 떠벌리는 작자들이 술자리마다 튀어나온다. 증명할 방법도, 정당한 명예와 보상도, 창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이유도 찾을 수 없다. 10만원 가치의 용역예술이 후광 효과로 3000만원에 거래되는 미래가 그곳을 접수하러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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