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2001년 2월, 대우그룹을 부도내고 도망간 김우중 회장을 찾겠다고 ‘김우중 체포 결사대’ 대원으로 프랑스에 갔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몇 곱절은 황망한 일. 그런데 뜻밖의 원군을 만났다. 연대단결민주(SUD, 수드)라는 신생 노총이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에 함께한다며 우리를 도왔다. 숙소를 내주고 집회에 함께하는 등 수드의 전폭적 지원으로 김우중 체포조 활동은 프랑스 국영방송과 주요 언론에 보도됐다. 수드 소속 체신노조는 우편물을 검사해 휴양도시 니스에 있는 김우중 별장을 찾아냈다. 김 회장을 붙잡아오지는 못했지만, 외환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떠넘긴 재벌과 정부의 잘못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제1노총 노동총동맹(CGT)부터 제5노총까지 정치적 신념에 따라 노조를 선택하고, 자율적 교섭과 투쟁으로 단체협약 적용률이 70%가 넘는 노동하기 좋은 나라 프랑스를 보며, 우리도 복수노조가 도입되면 노조 결성이 활발해지고 노동자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2009년 12월30일 복수노조 허용 법안이 통과됐다. 그런데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족쇄가 달렸다. 2개 이상의 노조가 단일한 교섭단을 만들지 못하면 소수노조는 교섭권 없는 ‘식물노조’가 된다. 법안을 만든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민주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쫓아내고 한나라당 의원만으로 법을 통과시켰다. 그는 “서민과 약자를 위해 휘두른 방망이”라고 말했고, “삼성에도 민주노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복수노조 시행 5년,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유성기업 국석호씨는 14일째 곡기를 끊고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던 동생이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지난 3월 목숨을 끊었다. 동생의 원한을 풀어 달라며, 상주인 형이 장례도 못 치르고 밥을 굶는 이유 중 하나는 ‘추미애법’ 때문이다. 기업별 노조-기업별 교섭 중심의 한국에서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은 ‘식은 죽 먹기’. 회사는 제2노조를 만들어 조합원을 빼간다. 과반이 안 되면 사무·관리직을 가입시킨다. 민주노조에 남으면 온갖 불이익을 준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지난 5년, 출근이 지옥 같았다고 증언한다. 추미애법 시행 직후 발레오, 케이이씨(KEC), 상신브레이크, 콘티넨탈, 만도 등 힘센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제2노조가 좀비처럼 생겨났다. 갑을오토텍은 특전사와 경찰 출신 30명을 취업시켜 폭력을 휘두른 뒤 겁에 질린 노동자를 제2노조에 가입시키려다 대표이사가 구속됐다. 산업별 노조의 지회로 복수노조 금지와 무관하게 만든 노조는 있어도 추미애법 때문에 생긴 삼성의 민주노조는 없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폐기하고 소수노조도 교섭권이 보장되면, 어용노조를 만드는 실익은 줄어들고 민주노조를 만드는 실리는 커진다. 추미애법 5년, 노조 만들기는 여전히 독립운동처럼 어려운데, 노조 깨기는 참 쉬워졌다. 민주노조를 없애주면 올림픽 금메달보다 많은 성공 보수가 떨어져, ‘창조컨설팅’ 같은 노조파괴범들만 들끓는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당 강령에서 “노동자 문구 삭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노동권이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민주가 노동자를 위해 지금까지 뭘 한 것이 있느냐”(김종인 전 대표)고 묻고 싶은 건 노동자들이다. 노동권을 존중한다면, 회사가 만든 제2노조 때문에 일터가 지옥으로, 동료가 원수로 변한 노동 현장부터 가보라. 동생을 잃고 또 다른 동생들을 잃지 않으려고 식음을 전폐한 국석호부터 만나보라. 당신이 만든 노조법, 민주당 정권이 제정한 파견법과 기간제법부터 바꾸는 것이 노동권 존중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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