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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헌법 위의 선거법 / 서복경

등록 2016-08-31 18:06수정 2016-08-31 20:04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현행 ‘공직선거법’은 19개 장 334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자 크기 10포인트의 A4 용지로 출력하면 118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어지간한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선거법의 기본정신은 딱 세 조항으로 축약될 수 있다. 제58조, 제59조, 제254조다. 제58조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는 행위’로 선거운동을 정의한다. 제59조는 정해진 기간 동안만 제58조가 정의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제254조는 정해진 기간 외에 ‘선거운동’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이 단순한 논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특히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헌법 위의 질서를 정당화한다. 국가보안법이 ‘헌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양심·사상의 자유와 언론·표현·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권한을 갖는 것처럼, 선거운동이냐 아니냐의 잣대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된다.

생각해 보자. ‘정해진 기간 동안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후보자나 유권자 할 것 없이 국민의 모든 정치활동이 ‘선거운동인 것’과 ‘아닌 것’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관념에 기초한다. 그래야 기간 내 할 수 있는 정치활동과 할 수 없는 정치활동을 구분하고 규제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단연코 불가능하다. 입법자나 선거관리기관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유권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과 말과 행동의 흐름이 ‘선거운동인 것과 아닌 것’으로 반복적으로 재단당하면, 정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회피하게 된다. 이런 법질서에 대한 유권자의 합리적 반응은 정치 무관심이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이 법이 강제하는 질서에 순응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어떤 유권자가 정치 관련 글을 썼다가 기소당했다, 어떤 시민단체가 선거 관련 활동을 하다가 재판을 받는다는 기사를 일상적으로 접한다. 왜? 그 이유는 너무 복잡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정치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는 사실만 반복해서 각인될 뿐이다. 범법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는 행위와 생각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이렇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무력화되며,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참여’는 비합리적 행위가 되어버린다.

내년이면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등장한 지 30년이 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현행 선거법에는 다른 많은 문제도 있지만, 우선 이 세 조항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법을 바꾸려면 입법자들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유권자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당장 선거 과열, 정치 혼탁, 후보 난립, 부정부패에 대한 오래된 걱정이 과연 유권자를 위한 것인지 재고해봐야 한다.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고 더 많은 정치인들이 경쟁하는 건, 현직자에게 나쁜 일일지 몰라도 유권자에게 결코 나쁜 게 아니다.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대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돈선거가 걱정이라면 유능한 국세청과 경찰, 검찰이 자금 흐름을 규제하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 거대 정당과 거대 기업이 유착해 저질러온 금권선거의 문제를 유권자의 기본권 침해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확성기 소음은 골목길 채소 트럭의 소음처럼 곧 친숙해질 것이다. 쓸 수 있는 돈을 한정해두면 명함과 광고지 홍수도 유권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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