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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청년’이라는 찬란함 / 김성경

등록 2016-09-07 18:36수정 2016-09-07 19:38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여기 두 청년이 있다. 한반도 북쪽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은 인이 박이도록 들어온 김일성 일가의 영웅담에 시큰둥하다. 사회주의 혁명, 미제 타도 등의 거창한 구호는 부모들의 속 편한 소리다. 오직 이 혹독한 상황에서 돈을 벌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한다. 이를 위해 국가의 비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그(녀)는 국가에 복종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당원이 되어 국가와 결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만 있으면 이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 다른 청년은 군사분계선 남쪽에 산다. 그(녀)는 자신이 ‘흙수저’임을 받아들인 지 이미 오래다. 이런 환경에 태어나게 된 것을 원망도 해보고, 화도 내봤지만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다. 정규직은커녕 최저시급 알바로 연명한 지 수년째다. 진리가 되어 버린 ‘경쟁력’이라는 가치는 몇몇 ‘금수저’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그(녀)에게 취업, 결혼, 출산 등은 먼 얘기다. 어차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또 다른 ‘노예’가 될 텐데, 그 일에 앞으로의 인생을 걸고 싶지 않다.

남과 북의 두 청년은 참 닮았다. 국가와 사회를 믿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삶을 체념한 듯한 태도, 그리고 그들의 현재와 미래가 온통 비참으로 가득 차 있는 것까지 말이다. 북의 청년이 국가 폭력 앞에 살아남기 위해 ‘돈’만을 추종한다면, 남의 청년은 ‘돈’이라는 절대적 가치는 오직 극소수에게만 집적된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다. 남북은 각각의 미래 세력이 ‘돈’ 앞에서 무기력해져 버렸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한때 가치와 열망이 가득한 청년이 칭송받던 시기가 있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들이 뿜어내는 희망의 기운이 사회 곳곳을 들썩이게 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젊은 그들은 단단해 보이는 사회 구조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부모들의 보수성에 일침을 가했으며,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기존의 것을 전복하기도 했었다. 만약 인류가 조금씩이라도 진보의 길을 걸어왔다면 그것은 바로 이 젊은이들이 구습을 파괴하고 다름을 추구했기 때문이리라. 김일성을 위시한 공산주의자들이 만주벌판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때도, 지금은 꼰대 중의 꼰대가 되어버린 486들이 길에서 스크럼을 짜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때도 다 이들이 젊었을 때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에 똬리를 틀고 난 이후에 이들은 갑자기 늙어버린다.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반역이라고 낙인찍거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몽상가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폄하하며, 청년들의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젊었을 때 그렇지 않았다며 청년들에게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고 한다. 늙을 대로 늙어버린 남북의 기성세대는 ‘지금 여기’ 한반도에서 청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른다.

젊음이 단순히 생물학적 연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남북의 청년은 이미 더 이상 젊지 않다. 물신주의와 열패감에 빠져 역사성을 잊은 지 오래고, 공공의 가치 혹은 연대 등을 꿈꾸기에는 삶의 조건이 너무나도 비루하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이게 다 국가 때문이라고,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그렇게 책임을 돌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혹여 ‘청년’이라는 찬란함, 그리고 그것의 전복성이 두려운 남북의 ‘꼰대’들이 이들의 젊음을 갈취한 것은 아닐까. 고분고분하게 사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다른 생각을 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그렇게 최면을 건 것은 아닐까. 그 최면에 빠진 우리 모두가 서서히 파멸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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