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자 대만은 8년 만에 민진당의 재집권을 이뤄냈다. 정권 탈환보다 흥미로운 것은 대만 사회에 불고 있는 문화적 변화다. 105년 역사에서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이 배출된 것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우리 대통령도 여성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메탈그룹의 리더가 신생 정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도, 다수의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을 보유한 우리에겐 그저 그렇다. 35살 젊은 해커가 디지털 부문을 총괄하는 무임소장관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은 조금 흥미롭다. 35살이라는 나이와, 직업이 해커여서가 아니다. 그 청년이 24살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 젊은 신임 장관이 스스로를 ‘보수적 무정부주의자’라 부른다는 사실 때문만도 아니다. 놀라움은 “과연 2016년의 한국은 이런 장관을 맞을 문화적 준비가 되어 있을까?”라는 질문 뒤에 찾아온다. 이 젊은 장관 오드리 탕은, 현재 대만 사회가 겪고 있는 변화의 상징이다. 2014년 대만은 ‘해바라기 운동’의 열기로 가득했다. 국민당의 일방적인 대중국 무역정책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은 23일간 국회를 점거해버렸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04년 탄핵 정국의 열기는 선거의 판세를 바꿨고, 2008년 광우병 촛불은 광장을 밝게 메웠다. 하지만 찬란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와 괴리되었다. 온라인의 분노는 온라인에 맴돌고, 오프라인의 분노는 폭력으로 나타날 뿐이다. 대만은 해바라기 운동의 열기를 시민사회의 변화로 이끌어냈다. 온라인의 분노를 오롯이 오프라인으로 담아낼 플랫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거브제로(g0v)’라는 오픈소스 온라인 플랫폼이 있고, 오드리 탕이 바로 그 거브제로의 창립멤버다. 거브제로는 정부에 대한 정보를 모두에게 공개하는 ‘열린 정부’ 운동을 지속해 왔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법률, 예산, 경제지표, 심지어 공무원의 해외순방 내용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시각화하고 인터넷에 공개해 왔다. 바로 이 거브제로가 해바라기 운동 기간 내내, 온라인 공간의 분노를 오프라인으로 확장시켰다. 시민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했다. 정부의 권력은 정보의 공유와, 시민의 감시를 통해 견제되어야 한다. 거브제로는 이 단순한 원리로 시민운동을 조직했다. 그 핵심은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었다. 21세기, 그 효과적인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해커에게 있다. 바로 디지털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시민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해커들이다. 87년 거리에서 대학생들을 조직했던 학생운동권이 있었다면, 이제 시민을 조직할 해커가 필요하다. 대만 정부는 바로 그런 시빅 해커를 장관으로 기용했다. 시빅 해킹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도구와 접근 방법을 쥐여주고, 그들이 창의적으로 자신이 속한 도시 또는 정부 시스템을 개선시켜 나가게 한다. 이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장관 청문회는 참담하다. 여성 대통령의 정부에서 여성 장관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중동 국가인 아랍에미리트가 한국보다 여성 장관 비율이 높다. 대부분의 장관 후보자들은 환갑이 지난 노인들이며, 혁신적인 비전 따위엔 관심도 없다. 장관이란 그저 몇백일을 채우면 되는 정치적 포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국에서, 장관은 일하는 존재가 아니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두 나라다. 인터네이션스의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거주자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대만이라고 한다. 과연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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