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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새누리당, 투쟁! / 김남일

등록 2016-09-20 18:15수정 2016-09-20 19:23

김남일
정치팀 기자

“품성이 좋잖아.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운동권으로 따지면 엔엘(NL)이야.”

새누리당 한 의원이 밀정이라도 된 듯이 ‘품성론’을 앞세워 조심스럽게 엔엘로 분류한 이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다. “노선은 잘못됐을 수 있는데 사람 좋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민중성도 있고….” 그냥 사람 좋다는 말의 반복이다. 수식은 많은데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점들이 있지만 호남 출신에 서민적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잖아. 당 입장에서는 외연 확장이 가능하다는 거지.” 그런데 너무 박근혜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데. “친박은 하나가 아니잖아. 이정현류 친박도 있고 최경환류 친박도 있고.” 그러니까 뭐가 다른지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말했다고는 하지 마.” 무슨 말을 했다고. “사람이 좋잖아.” 아이고.

박근혜·이정현 두 사람을 오래 지켜본 한 당직자가 대신 이렇게 말해준다. “신앙, 종교적 관계.” 깔끔하네. 고난의 행군, 옹위, 옹립, 그 선봉에서 의원 시절 박근혜 어록집까지 발간했던 이정현 대표는 ‘정치적 엔엘’임이 분명하다.

‘수령’의 영도 아래 당과 인민이 하나 되는 이 정부에서, 당의 공식 보도자료에서는 ‘북한식 현지지도’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정현 대표는 4일 일요일 여의도 부근 한강둔치에 나가 자전거를 타고 연날리기를 하고, 캠핑을 나온 시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 ‘서울시민들이 시외로 나가지 않고도 시내 강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들이 더없이 행복하고 행복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 장면에서 박 대통령과의 근친성은 무서울 정도다. 울산으로 요란한 휴가를 다녀온 박 대통령을 위해 울산시가 만들었다는 ‘대통령께서 걸으신 곳’ 표지판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2016년 7월28일 여름휴가를 맞아 대왕암공원을 방문하셨다. 대통령께서는 ‘산업도시인 울산에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다행스럽고 잘된 일이다. 울산 경제를 살리는 데 좋은 자원이 됐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민생을 특히 강조하는 이 대표의 품성마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보도자료를 보자. “첫째 집에선 홀로 생활하시는 할아버지로부터 틀니가 잘 맞지 않다는 애로사항도 들었고, 냉장고에 과자 한 봉지를 넣어 드리면서는 ‘아따 참말로 반찬도 별로 없네’라며 어려운 형편에 더 도와 드리지 못하는 점을 애석해하며 돌아섰다. 두 번째 들른 집에서는 직장암 말기 수술을 하고 재활 중이신 어르신의 쾌유를 기원하며, 입원하려면 인우보증이 있어야 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듣고 ‘가슴 아프다’며 안타까움을 함께하고 보완책에 대해 ‘생각하고 검토하겠다’라고 답해드렸다.” 품성론을 떠받치는 것은 믿음이다. 그는 정말로 생각하고 검토해서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다.

수령 치하에서 ‘새누리 혁명론’에 입각해 자생적으로 운동권적 사고를 하고 그 언어를 쓰는 의원들이 해방전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타도 대상을 향한 한 새누리당 의원의 뜨거운 격문이다. “이정현 대표는 괴뢰정부의 한계를 안고 있다. (청와대) 꼭두각시 아닌가. 이러다가 폭발한다. 당이 내부모순을 정리하지 못하면 결국 혁명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몇월 며칠, 언제 몇시라고 말은 못 해도 결국 그날은 온다. 다들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간만에 심장이 뛰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가 절로 “투쟁!” 소리가 나올 뻔했으니.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힘차게 싸우러 가는 새누리당이 갑자기 재밌어졌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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