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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진보정당, 대선에서 할 일이 있다

등록 2016-09-28 18:38수정 2016-09-28 20:04

진보정당운동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대선에 후보를 내서 진보 개혁 청사진을 밝히는 것이 바로 그런 일 중 하나다. 진보정당 대선 후보가 나서서 이 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논전의 왼쪽 공간을 채워야 한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벌써 대선 정국이 시작됐다. 신문 정치면 주인공은 이미 여야 대선 후보군이다. 그럴수록 그늘이 지는 것은 진보 세력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항에 포함시키는 대권 주자 목록은 범새누리당, 범민주당 일색이다. 대선은 어차피 양강 구도라는 게 한국 사회의 상식이고, 이 상식에 따라 처음부터 ‘의미 있는’ 후보군과 그렇지 못한 쪽을 나누는 탓이다. 지금 진보정당은 후자에 속한다.

보수정당들과 달리 진보정당 쪽에서는 대선과 연관된 흐름이 아직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힘겨운 싸움에 나서는 일이니 흥이 날 리 없다. 어쩌면 대선 국면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는 심정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의 어려움과 상관없이 진보정당운동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대선에 후보를 내서 진보 개혁 청사진을 밝히는 것이 바로 그런 일 중 하나다. 진보정당 대선 후보가 나서서 이 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논전의 왼쪽 공간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이 논전의 주된 쟁점이 기득권과 관성 쪽으로 더욱 기울어질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는 진보정당 후보의 이런 역할이 한층 더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다. 2012년 대선의 주된 쟁점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였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아래로부터 분출하기 시작한 방향 전환 요구의 한국판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의 대립선은 그때보다 오히려 후퇴해 있다. 기본적으로는 박근혜 정권이 너무나 무능하고 퇴행적인 탓이다.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실현은커녕 ‘안전’과 ‘상식’이라도 지키는 게 급선무인 형편이다.

하지만 현 정권만 문제는 아니다. 보수야당들 역시 정치 쟁점의 퇴행에 일조하고 있다. 2012년 대선 결과를 이들은 중도층 변수를 중심으로 바라본다.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경쟁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앞서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고 본다. 이런 평가는 ‘복지’나 ‘경제 민주화’를 선명히 내세우는 게 그다지 이롭지 않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래서 4년 전에는 시대정신 대접을 받던 주장들을 이제는 야당 정치인들 입에서도 듣기 힘들게 돼버렸다.

그냥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2017년 대선은 이미 5년 전에 부상한 쟁점들조차 제대로 건드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이라면 설령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그게 과연 그간 막혀 있던 역사의 물꼬를 뚫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약속한 것도 제대로 안 지키는 게 우리가 아는 정치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놓는 약속의 수준까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면 앞으로 5년이 또 어떨지는 안 봐도 빤하다.

지금 당장은 이런 한계가 심각하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각 당 예비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화젯거리를 찾아 과감한 공약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여당 쪽 주자들 입에서 “귀족학교 폐지”니 “모병제 전환”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선 전에 잠시 스쳐가는 풍경일 뿐이다. 양강 후보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주로 지지율 순위가 처지는 주자들이 이렇게 진보정당 정책을 차용해서 관심을 모아보려 한다.

하지만 양강 구도가 굳어지면 이런 이야기들은 무대 뒤로 사라질 운명이다. 중도층 흡수 전략의 거센 바람 앞에 곧 꺼질 연약한 불씨들일 뿐이다. 진보 개혁의 비전을 본선까지 줄기차게 이어가는 일은 결국 진보정당이 지어야 할 몫이다. ‘증세가 뒷받침하는 복지’, ‘노동권 강화로 추진력을 얻는 경제 민주화’가 쟁점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들어야 할 임무가 진보정당 대선 후보에게 있다.

실은 이게 버니 샌더스 바람의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 샌더스가 내건 목표는 미국 정치의 논쟁 지형을 시대의 풍향에 맞게 이동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 목표에 따라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금융위기 이후의 사회에 마땅히 풀어내야 할 말들을 풀어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바람이 일었다. 그것이 샌더스 바람이었다.

진보정치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하니 바람도 분 것이다. 기회를 만들려고 기획해서가 아니라 제 할 일을 하다 보니 기회가 열렸다. 한국의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대선 국면에서 대중의 상상력과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일로부터 도망치지 말자. 그 폭을 넓히는 만큼 진보정치의 기회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그 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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