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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철밥통을 위한 변명 / 서복경

등록 2016-10-05 18:27수정 2016-10-05 20:26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요즘 국민들의 세금과 보험료로 운영되는 공조직들의 내부가 참 오리무중이다. 각 행정부처와 공공기관들에서 비상식적인 정책 결정들이 이루어지고, 종종 ‘비리 의혹’도 불거져 나온다. 수십억, 수백억의 세금과 보험료가 이상하게 쓰이고 있다는 소식이 날마다 언론 지면을 장식한다. 검찰이 수사를 한다는데 대부분 무혐의이거나 무죄란다. 그런데 ‘의혹’은 꼬리를 문다.

문득 행정부처 직업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무리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이 허술하다 해도, 이러저런 ‘비리 의혹’들이 상층 정책결정자 몇몇의 테이블에서만 논의되었을 리 없다. 공문서 양식을 보면 대개 담당자, 과장, 팀장…들의 도장 직인란이 있지 않은가. 최상층 결정자 몇몇이 정했다 해도, 각 부처와 기관들은 법규와 지침에 따라 정해진 위계절차의 승인이 있어야 그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다. 공문서 각 칸에 도장을 찍은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근무자들은 ‘뭔가’ 알고 있을 거란 소리다.

물론 각 부처에 속한 개인들은 전체를 조망할 수 없으니, 자기가 찍은 도장이 전체 그림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당장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 칸에 도장을 찍은 공무원과 공기업 노동자들이 가진 퍼즐들을 하나씩 모아 맞추면 그림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마도 지금 각 행정부처와 공기업 각 부서마다 이런 퍼즐조각 하나씩은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기관장은 1명이지만, 담당자, 계장, 과장…은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

언론 보도를 보면, 이런 ‘의혹’에 관한 정보출처로 ‘기관 관계자’ ‘전직 기관 근무자’ 등이 거론되는 걸 볼 수 있다. 공조직 내부에서만 접근 가능한 이런 종류의 정보들이 외부로 흘러나오는 경로라고 보면 된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은 익히 알려져 있다. 법적 보호도 미비할 뿐 아니라, 법적 보호가 미치기 이전에 이미 생계와 안전의 위험에 노출되는 게 보통이다. 특히 이번 정부의 ‘내부 고발자’에 대한 위협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아닌가. 이 정부는 정부와 관련된 어떤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사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일관되게 ‘의혹’에 관한 정보 유출자를 먼저 찾았다. 찾을 뿐 아니라, 징계하거나 고발하거나 해고하는 방식으로 차후에 있을지도 모를 ‘내부 고발자’ 발생을 방지하려 했다. 이런 조건에서 퍼즐조각이 쉽게 외부에 드러나기는 어렵다. 정의를 실현하기 전에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위험해질 테니 말이다.

그러나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퍼즐조각들이 문서분쇄기를 통해 모조리 파쇄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현실적이지 않다. 아마도 누군가의 서랍에, 컴퓨터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 혹은 사람의 뇌라는 기억장치 속에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조각들을 가진 자들 중 누군가는 조직의 비리에 공모하여 이득을 얻었기 때문에 관련 정보는 묻는 데 협조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비리의 사슬로 엮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모두 잠재적 ‘내부 고발자’가 된다.

이것이 ‘철밥통’이라 비난받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하는 중대한 사회적 기능이다. 선출직과 임명직 공직자들이 위법하거나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결정을 내릴 때, 곳곳에서 경고등을 켜고 알람을 울리는 기능을 해야만 일반 시민들은 비로소 그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불이익과 해고의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노조가 있어야, 우리가 그들이 울리는 알람을 들을 수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철밥통의 횡포’라는 비난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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