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백>은 1970년대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과 40년 뒤의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을 두 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간첩조작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이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이던 이철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간첩’으로 수감된 뒤 그 충격에 세상을 떴고, 어머니도 3년 뒤 남편을 따라갔다. 뒤늦은 무죄에 아들은 하염없이 울었다. 유학생 간첩 사건으로 7년을 복역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김승효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40년째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소리도 못 내고 입만 열심히 움직이던 그는 “한국은 나쁜 나라다. (다시는) 한국에 안 간다”고 했다.
가해자 중 주연급은 김기춘씨다. 그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작성했다는 메모는 간첩 ‘조작’을 알면서 은폐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간첩’ 이철이 방북했다는 시점에 실제는 다른 곳에 있었고, 일본변호사모임은 이 사실을 공개하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김 국장은 이를 덮으려는 듯 외무부 국장에게 ‘입북 날짜 등은 보안 조처해달라’며 파란색 사인펜으로 메모를 남겼다. “우리가 남이가”라던 초원복집 사건은 헌법소원으로, 정윤회 게이트는 ‘국기 문란 사건’으로 되치기하며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최승호 피디가 내민 40년 전 자필 메모 앞에선 “기억나지 않는다”며 꽁무니를 뺐다.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활동한 한홍구 교수(성공회대)는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데 동조한 법률가들을 ‘법비’라고 불렀다. 법을 악용한 도적이란 뜻이다. <자백>에도 국가정보원이 사진과 출입국기록, 영사증명서를 위조해가며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동안 이를 은폐·방조한 검찰 법비들이 등장한다.
<자백>이 열악한 상영관 사정에도 불구하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최순실·우병우 게이트에 등장하는 법비들 모습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은 아닐까.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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