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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그 남자는 어디에 / 이라영

등록 2016-10-19 18:02수정 2016-10-19 20:18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대부 2>에서 대부인 마이클은 아내가 유산했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이 “남자아이였는가”다. ‘남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태아’인가, 마이클은 그것이 궁금하다. 후에 자연유산이 아니라 인공유산이었으며 태아가 남아였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마이클은 분노하며 아내 케이를 폭행하고 내쫓는다.

생명은 중요해, 폭력은 나빠, 용서와 화해, 평화… 이런 말들. 두루뭉술한 도덕의 언어는 때로 삶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폭력의 언어로 작용한다. 낙태에 대한 담론은 늘 어느 한쪽이 만들어놓은 ‘도덕’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도덕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과 도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 요즘 벌레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온갖 억울한 벌레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낙태충’과 ‘맘충’도 있다. 임신을 중단해도 벌레고, 아이를 낳아 길러도 벌레다. 여성이 벌레가 되는 동안 ‘그 남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여성들에게 성관계는 임신, 출산, 육아까지 고민을 이어지게 만든다면 남성들에게 성관계는 욕구라는 주제를 맴돈다. 정작 ‘비도덕’은 여기에 있다. 성폭력도 ‘남성의 성욕’의 문제로 접근한다. 성폭력을 공유하던 사이트인 ‘소라넷’ 폐쇄를 두고 소라넷 지지자들은 음란물 볼 자유를 주장했으며 언론에서는 “그동안 음지에서 욕망을 풀던 남성들”을 친절히 걱정해주기도 했다.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남성의 욕망을 걱정하느라 여성의 생명은 뒷전이다.

생명? 아시아계 미국인은 백인보다 낙태율이 두 배로 높다. 이민을 와서 살더라도 남아선호 악습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소중하다지만 생명은 성별에 따라 선택된다. 과거에 여아낙태는 현재의 여아와 ‘미래의 어머니’를 죽여 인구를 감소시키는 ‘정책’이었다. ‘사람’을 낳아야 한다면, 아들이어야 했다. 90년대 중반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15명으로 심한 불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라진 여아’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이제 짝이 없는 요즘 남성을 걱정한다. ‘살림 밑천’으로 태어났든, 운이 좋아 태어났든, 여아가 없어져야 할 생명으로 장려되던 80, 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을 이제는 ‘가임기 여성’이라 한다. 그들은 현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머니 되기 여부를 선택하는 중이다. 출산율 저하가 정말 문제일까. 여성은 ‘사람’이 되지 못한 채 생명을 품거나 남성의 욕망을 담는 ‘그릇’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지하철역에서 본 공익광고.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입니다. 임산부를 배려합시다.” 이 이상한 문장을 풀어보자면, “나라에 도움이 될 미래의 사람을 품고 있는 임산부를 배려합시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임산부는 나라의 미래를 모시고 다니는 존재니까 배려를 받아야 한다. 나라와 미래 사이에서 정작 임신한 여성을 배려하는 태도는 저 문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나라가 인식하는 ‘생명’의 실체다. ‘가임기 여성’이라는 말처럼 여성은 현재 임신할 수 있는 여성, 앞으로 ‘가임기 여성’이 될 여성, 이제 임신할 수 없어서 여성이 아닌 여성으로 나뉜다. 여성을 사람 취급 하지 않기 때문에 여아‘를’ 낙태할 수는 있지만 여성‘이’ 낙태하면 비도덕이 된다.

태아를 함께 만든 남성은 ‘비도덕’의 화살을 피해간다. 의사와 여성 사이 ‘불법적 거래’만 남는다. 이 거래에서조차 여성은 의사의 위험수당을 감당하느라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피임, 육아, 낙태가 ‘여성문제’가 되는, 그 자체가 사회의 비도덕성을 보여준다. 그 남자는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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