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해비타트한국민간위원회 위원,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이사장 ‘모두를 위한 도시’라는 비전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표방하는 유엔 해비타트(주거와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에 관한 유엔회의) 3차 총회가 지난 20일까지 나흘 동안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렸다.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2차 총회에서 제시된 도시의제가 주거에 대한 권리와 지속가능도시였다면, 새로운 도시의제의 핵심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 포용도시다. 소외계층을 포함하여 모두가 적절한 주거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도시, 공공공간이 제대로 역할을 해서 다양성이 존중되고 공간정의가 살아있는 도시, 모든 시민이 공평하게 도시인프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도시가 포용도시의 핵심이다. 이번 총회에는 세계의 관련 공무원, 전문가, 시민사회운동가 등 3만5천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도 정부대표단과 서울시·수원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부문에서 참여하였고, 주거·도시·환경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의제21 관련 민간단체로 구성된 한국민간위원회에서도 50여명이 참석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한국 정부는 대표연설을 통해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자본과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뉴타운, 스마트도시 등을 건설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저소득층 주거 및 빈곤문제와 강제철거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앞으로 새로운 도시의제의 핵심인 ‘모두를 위한 도시’를 위해서 한국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언급이 없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에 세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도시개발의 그늘에 가려진 강제철거 사례를 다룬 국제강제철거법정, 강제퇴거 위협을 받고 있는 키토 외곽 볼라뇨스 마을 현장답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전개했다. 특히 세계주거연맹은 설립 40돌 기념행사에서 주거를 인권과 관련한 강제력 있는 권리로 해석할 것과, 부동산 투기 중단과 공간에 대한 권위주의적 지배를 중단할 것 등을 요구하는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선언문은 해비타트 3차 총회에서 제시된 새 도시의제가 포용도시를 위한 국제적 로드맵이 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향후 새 도시의제 이행계획에서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충돌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해비타트 3차 총회에서 채택된 새 도시의제는 개발의 그늘에 가려진 빈곤과 강제철거, 공간의 권력화에 따른 불평등과 소외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모두를 위한 포용력 있는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과 비전 그리고 목표를 제시하고, 그 시행을 촉구하는 상징적인 선언문이다. 이제 각국은 새 도시의제를 이행하기 위한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진입한 국가답지 않게 쪽방, 옥탑방에서 강제철거에 이르기까지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최저 주거기준은 법제화되어 있지만 실효성이 없고, 공공임대주택 재고량도 오이시디 절반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청년 주거와 노동자 주거는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해비타트 3차 총회를 위한 국가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전철을 밟지 말고 앞으로는 충분히 교류하며 이행과제를 준비해야 한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로서 수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주목하는 모델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개발 과정에서 맞닥뜨린 빈곤과 불평등 문제, 소외되었던 저소득층 주거 문제를 어떻게 풀어왔는지 개발도상국과 공유해야 한다. 잘한 점은 널리 소개하고 잘못한 점은 일러 깨우치는 것이 허리 구실을 해야 할 한국이라는 국가에 부여된 엄숙한 국제적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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