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개헌을 제안했다. 최순실 의혹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필요했을 것이다.
잘될까? 김재원 정무수석은 개헌을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망친 장본인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그렇게 나오면 개헌 잘 안될 것이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다. 국정난맥의 원인을 대통령 권위주의 체제로 보는 국회의원이나 학자들은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 반정치주의 영향으로 국회와 정당을 불신하는 국민들은 미국식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한다. 합의가 쉽지 않다.
아무튼 개헌은 개헌대로 추진하면 된다. 지금부터 시간을 두고 차분히 토론하고 논쟁해 나가야 할 일이다.
개헌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은 별개의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의혹을 개헌몰이와 검찰의 면피수사로 대충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수석으로 하여금 미르재단 및 케이스포츠재단을 불법적으로 설립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살펴도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표현대로 ‘나쁜 사람’이거나 노회찬 의원 말대로 ‘죄의식 없는 확신범’ 같다. 알고 했다면 나쁜 사람이고 모르고 했다면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다. 나쁜 사람이나 죄의식 없는 확신범은 책임을 져야 한다.
형법 7장(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123조는 직권남용 조항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대통령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임기는 2018년 2월24일 끝난다. 공소시효가 그때까지 정지되므로 재직중 범죄 행위가 있었다면 퇴임 이후 기소되고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비극적 상황을 피해 갈 방안이 있을까?
있다. 대처 방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냐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전자라면 좀 쉽다.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을 철저히 조사해 형사처벌 받도록 하고 대통령 자신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면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게 했다. 우리 국민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통령을 퇴임 이후에 꼭 감옥에 보낼 정도로 모질지 못하다.
후자라면 복잡하다. 죄의식이 없으니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대통령의 죄의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의 말만 믿고 경찰에 수사를 지시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에 감사를 지시했다면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행정부 국·과장을 말 한마디로 내쫓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최순실씨의 딸을 입학시킨 이화여대에 특혜를 주라고 지시했다면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말을 쉽게 받아들일 리 없다. 따라서 여러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원종 비서실장, 김재원 정무수석, 김성우 홍보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이 사표를 내야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 마지막으로 충언을 해야 한다.
장관들도 나서야 한다. 장관은 국무위원이다.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국정이 지금처럼 문란한 상황에서 장관 몇 개월 더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장관’이 평생의 치욕으로 남을 수도 있다.
청와대 참모들, 장관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면 아무리 둔감한 박근혜 대통령이라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그게 국정 정상화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 친박 정치인들도 이제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대통령의 잘못을 알고도 가만히 있으면 비겁한 것이다. 모른다면 멍청한 것이다. 비겁이나 무지의 대가가 무엇일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개헌에 환호작약할 때가 아니다.
정치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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