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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경제는 ‘우주의 기운’에 맡겼나 / 정세라

등록 2016-10-30 17:52수정 2016-10-30 19:36

정세라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장

브이아이피(VIP), 비선 실세, 팔선녀, 말, 호스트바, 기업 삥뜯기, 자금세탁, 혼, 에너지, 우주의 기운….

판타지 장르도 아닌 일일드라마에 귀신과 빙의를 뜬금없이 비벼 넣던 임성한 작가도 혀를 내두를 정치 막장극이 이어지고 있다. 권력과 돈, 치정을 빼어나게 갈무리한 영화나 드라마야 흔히 보았다. 그런데 혼과 에너지, 우주의 기운 같은 초현실적 요소가 난무하고, 20~30년 전 망자들의 역사까지 복선으로 끼어드는 판이니 이번 드라마는 결말이 어디로 향하는지 도무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제 최순실이 돌아왔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최순실은 하야하라!”, 헛웃음 나는 시위 구호에서 엿보이듯, 우리가 몰랐던 ‘국정 파트너’ 혹은 ‘공동 집권자’로 판명날지 모를 등장인물이다. 최순실만 돌아온 게 아니다. 막장극의 주조연급들은 한동안 언론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드라마 초입부 시청률을 전대미문으로 올려놓더니, 이제 속속 검찰로 향하고 있다. 최순실·고영태·차은택은 모두 귀국했거나 귀국 의사를 밝혔고,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전·현직 사무총장들도 검찰 문턱을 밟고 있다. 과연 퍼즐은 맞춰질까? 우병우 수사를 우병우에게 보고하는 코미디를 찍던 검찰이 재등판하고, 특검 도입은 여야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복잡한 드라마가 어떤 반전과 탄식의 스토리로 우리를 이끌어갈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시청률 높은 막장극의 진짜 결말은 뭔가? 우리는 방송사 아침 드라마의 ‘시청자’가 아니다. 시청자야 욕하면서 보는 막장극이 막을 내리면, 텔레비전을 끄고 현실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 현실과 고스란히 겹쳐 있고, 스토리 전개와 결말에 국민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 모든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해도 풀릴 둥 말 둥 한 국정 현안들이 막장극에 결박된 신세다. 국정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이었는지, 최순실이었는지 의심받고 통치권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보니, 제아무리 유능한 관료와 전문가인들 중대한 정책 결정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이번주만 해도 주요 현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정부는 31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등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해야 하고, 오는 3일엔 가계빚을 수렁에 빠뜨린 부동산시장 과열과 관련한 추가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 대우조선은 4조2천억원을 털어 넣고도 내년 벽두부터 임직원들이 순환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등 문제가 뒤엉키고 있다. 올해 수주실적이 1차 구조조정안을 마련할 때 전제로 잡았던 금액의 10% 남짓밖에 안 되는 탓이다. 부동산시장은 정부 추가 대책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인데, 정책에 ‘알맹이’가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가 솔솔 흘러나온다.

국회 기능도 최순실 문제에 결박돼 있긴 마찬가지다. 연말에 가장 큰 책무인 예산심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 국회 예결특위 등에 예산심사 안건이 올라왔지만 내년도 거시경제에 대한 정책 질의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 모양새다. 경제가 정부 재정지출에 호흡줄을 꽂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형편인데, 연초 재정집행마저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국정 공백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중요한 결정을 아무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무책임한 상황이 길어질수록 뒷날 혼란 수습의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는 그이의 계시만 믿고, 우리가 그저 목을 빼고 있어야 할 노릇일까.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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