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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대통령제의 거국내각

등록 2016-11-01 16:47수정 2016-11-01 19:46

1960년 4·19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거국내각’을 시도했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던 4월22일 오후, 이 대통령이 허정 전 서울시장과 변영태 전 국무총리를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불러 시국 수습 방안을 의논하던 자리에서 거국내각 얘기가 나왔다. 당시 허정은 “지금부터라도 환국 때의 초당적 위치로 되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당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합니다”라는 등 여러 수습책을 건의한다. 이 대통령은 ‘그렇다면 입각해서 도와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허정이 수석 국무위원인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사흘 뒤인 4월25일이지만, 그 전날부터 라디오에서는 이미 ‘허정·이호·권승렬씨 등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조직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4월26일 대통령 ‘하야’ 발표까지 며칠 동안 ‘거국내각’은 정권 차원에서 다급하게 시도됐던 위기 돌파책이었다.

이승만의 거국내각 구상은 대통령직 유지가 대전제였다. 이 대통령 스스로 하야는 물론 권력을 놓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허정도 이승만이 대통령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26일 국회에서 대통령 즉시 하야 결의가 채택된 뒤 여야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도 허정은 “나는 이 대통령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이 박사(이승만)를 중심으로 한 거국내각을 조직하고 시국을 수습하고자 입각한 몸입니다”라고 말했다. 거국내각도 대통령 아래일 뿐이라는 얘기다.

거국내각은 실제로 대통령제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1·2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 전시내각 등 거국내각이 구성된 전례는 대부분 내각제 국가였다. 행정부의 모든 것을 대통령이 책임지고 총리와 각료는 보좌 구실일 뿐인 대통령제에선 거국내각은 물론 연립내각도 실현되기 어렵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역대 정권의 위기 때마다 거국내각이 주장됐지만, 실제 성사된 일은 없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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