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가 실제로는 허가제로 운영된다. 집시법과 시행령으로 시간·공간상 여러 조건을 걸어 곳곳에 ‘금지’의 근거를 만들어 놓은 탓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로 모두 1258명이 기소(약식기소 포함)됐는데 일반교통방해죄로 기소된 사람이 589명으로 가장 많았다. 시위할 ‘공간’을 사실상 봉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행령에 전국 ‘주요도로’ 88곳을 금지 가능한 장소로 구체적으로 못박아 웬만한 큰 도로에선 합법시위 자체가 어렵다. 도로에서 시위한 사람에게 집시법 대신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일종의 꼼수다. 금지 장소에서 시위한 것만으론 법정형이 벌금 50만원 이하로 현행범 체포 요건조차 안 되니 10년 이하 징역형이 가능한 일반교통방해죄를 억지춘향 격으로 갖다붙이는 것이다.
12일 100만명 이상 참가한 촛불시위가 열기 속에서도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돼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다.
애초 경찰은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경계로 차벽을 쳤다. 청와대 인근 자하문터널 북단에서 효자동-광화문-남대문-서울역-삼각지-한강대교 남단까지를 ‘금지’ 가능 구간으로 못박은 시행령을 내세워 행진을 막으려 했다. 법원이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이번 집회의 특수한 목적”을 고려해 광화문 입구까지 행진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축제 같은 평화시위 분위기가 망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박산성’ 때처럼.
대통령·총리의 관저나 외교사절 숙소 등의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시위, 밤 12시 이후의 시위는 여전히 금지된다. 사실상 집회·시위‘금지’법이다.
우리의 시위문화와 시민의식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시민의 목소리를 두려워하는 권력자들이 이를 틀어막으려 무리수를 두지만 않는다면 폭력시위는 자연히 사라진다. 최근의 잇따른 촛불시위가 남기는 또 다른 교훈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12일 서울광장에서 잡힌 촛불시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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