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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최초의 여성 대통령 / 이라영

등록 2016-12-14 17:55수정 2016-12-14 20:36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앞으로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예상 못 한 말은 아니지만 굳이 귀로 듣고 싶지 않은 한탄이 들려온다. 다른 여성의 과오에 ‘같은 여자라서’ 연대책임을 져야 하나. 웬걸,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100년 내로는 여성 대통령 꿈도 꾸지 마라”는 으름장을 놓던 박지원 같은 정치인을 보면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일부에서 ‘국부’라 부르는 한국 최초의 대통령은 탄핵되기 전에 하야했지만 그는 ‘이승만’이지 ‘남성’을 대표하진 않는다. 모든 차별의 핵심은 개별성의 삭제다. 완벽한 타자화.

지난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저녁 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어느 때보다 강조했다. 여성이 처음으로 어떤 자리에 오르고 나면 두번째로 그 자리에 여성이 등장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잘되면 이제는 ‘여성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안도 때문에, 안되면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편견 탓이다.

올해 전 세계에서 2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지난 8월 탄핵된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그리고 한국의 박근혜. 이 둘을 비교하는 시각을 종종 발견한다. 2001년 탄핵안이 가결된 인도네시아 압두라만 와힛을 비롯하여 일부 남미 국가에서 몇 차례 대통령의 탄핵이 있었다. 그러나 유독 브라질의 호세프와 비교 선상에 오르는 이유가 단지 물리적으로 가까운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으려 한다.

호세프와 박근혜의 탄핵 사이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두 사람의 정치 이력과 정치적 신념 등 무엇을 비교해도 딱히 공통점은 없다. 호세프는 과거에 군부 독재를 반대하며 정치 이력을 쌓아온 데 반해 박근혜는 본인이 군부 독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며 그 독재자의 딸이기도 하다. 호세프는 박근혜처럼 도무지 내버려둘 수 없는 과오가 있었다기보다는 정치 공세에 의해 밀려난 면이 크다. 그러나 이 둘은 오직 ‘여성’이라는 점에서 묶여 버렸다. 여성이 여성으로만 묶이는 일은 많은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왜곡한다.

권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여성’이라는 이름은 불명예스럽게 불려나온다. 가장 안전한 이미지는 불쌍한 상태다. 지금까지 박근혜가 드러낸 ‘여성성’을 돌아보면 그는 ‘여성으로서’ 가부장제 사회의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꽤 잘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의 올림머리조차 ‘단아한 여성상’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하기에 좋은 스타일이다. 그가 꾸준히 ‘어렵고 힘든 과거’와 ‘외로운 인생’을 언급하는 이유는 단지 미성숙해서라기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체득한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적인 개인사를 빠짐없이 언급하며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그의 화법은 심지어 비장미로 미화되기에 적절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불쌍하다’고 여긴다. 그는 자신의 불쌍함을 강조해서 손해본 적이 없다. 이 서사는 그가 온몸에 새겨넣은 강한 무기다. 곱게 차려입고 열심히 웃으며 가끔 불행한 인생 이야기를 꺼내드는 ‘여자’. 보수 정권에서 간판으로 내놓기에 오히려 적당했기 때문에 그 ‘여자’를 내세워 정당의 이미지를 세탁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여자’만 쏙 빼내고 차마 보수라 부르기도 민망한 비양심적인 집단은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박근혜라는 인물을 끌어내리더라도 유신신화가 여전히 버티고 있다. 박근혜를 버리는 사람들조차 박정희는 버리지 않으려 한다. 이제 남아 있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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