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선임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박연차씨에게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반기문 총장은 청렴하게 살아온 공직자다. 의혹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도 파장은 만만치 않다. 반기문 총장이 대선 예비후보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뭘까. 첫째, 대선판에 절대 강자가 없다. 권불십년의 늪에 빠진 여권의 사정이 특히 절박하다.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이 경쟁적으로 반기문 총장을 영입하려고 한다. 둘째, 반기문 총장은 정치인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에 불만이 많다. 언제나 새로운 정치인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 미국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대통령이 됐다. 셋째,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지위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그냥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세계의 대통령’으로 인식하면 ‘반기문 대한민국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반기문 총장은 대통령 안 된다. ‘될 수 없다’는 현실과,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당위를 포함하는 의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그는 “정당이 뭐가 중요하냐”고 했다. 정당과 의회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반기문 총장은 정당 경험도, 의회 경험도 없다. 미국은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도 별일 없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반기문 총장이 지금 휘두르는 무기는 반정치주의다. 반정치주의는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이 만들었다. 재벌, 관료, 언론이 확산시켰다. 정치 신인들도 반사이익을 누렸다. 1992년 정주영, 1997년 이회창, 2002년 정몽준, 2007년 문국현, 2012년 안철수가 그랬다. 그들은 모두 실패했다. 둘째, 반기문 총장은 매우 뛰어난 관료다. 그래서 정치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관료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기술했다. “전문관료는 데마고그(선동가)가 아니며 데마고그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데마고그가 되려 한다면 대체로 그는 매우 나쁜 데마고그가 되고 만다. 진정한 관료는 그의 본래적 사명에 비춰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행정만 하게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비당파적 자세로 행정을 해야 한다.”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정치가, 지도자 및 그의 추종자들이라면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것, 즉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 당파성, 투쟁, 열정, 분노와 편견 등은 정치가, 특히 정치적 지도자들이 활동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성경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는 말로 새기고 싶다. 정치인은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결단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실천적으로 결합할 줄 알아야 한다. 청와대, 행정부, 국회, 정당, 지방정부에서 오랫동안 경제성장,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등 시대적 과제의 해법을 모색하고 실천한 대선 예비주자들이 있다. 김무성, 김문수, 김부겸, 김종인, 남경필, 문재인, 박원순, 박지원, 손학규, 안철수, 안희정, 오세훈, 유승민, 원희룡, 이재명, 정의화, 천정배 등이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반기문 총장보다 잘할 것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2011년에 쓴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그는 “후보의 경력을 포함한 전 생애를 통해 구현된 가치 자체가 비전”이라며 “어떤 화려한 경력을 쌓았는가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해 왔는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능력을 보여주었는가가 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비추어도 반기문 총장은 탈락이다. 반기문 총장은 선거를 이끌어갈 후보의 리더십도, 당선 뒤에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의 리더십도 갖추지 못했다. 너무 가혹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기문 총장이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세계의 존경을 받는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다. 반기문 총장은 대통령 안 된다.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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