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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광장, 역사의 원동력

등록 2016-12-27 18:21수정 2016-12-27 21:19

아무리 훌륭한 제도 야당 정치인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만들어도 재벌공화국의 게임룰을 그것만으로 바꿀 수 없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이란 재벌 지배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대선과 대통령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변화는 광장이 이끄는 것이다.

촛불의 압박은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저항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광장으로부터의 압박만이 사드 배치와 같은 자살적 종미 실책을 막을 수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가져다줄 수 있다. 광장의 구호가 청와대에까지 잘 들려야 청와대의 주인이 민심을 그나마 고려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확실히 사회를 통합해주는 하나의 기제가 된 것 같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한국인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화제는 바로 ‘박근혜 사태’로 돌리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계급의식까지 바로 대중적으로 성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대부분에게 박근혜는 최악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려 했던 재벌 권력의 대표자라기보다는 그저 인격적 결함 등으로 실패하게 된 대통령이다. 그래도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권과 유착하여 돈을 주면서 저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추진했다는 사실, 즉 국가 공공권력이 기업들에 의해서 사유화됐다는 점이 대다수에게 문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박정희 신화에 이어 삼성 신화, 수출 대기업의 신화도 무너져야 이 나라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국외에서 만나는 한국인들과 정치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로서는 한 가지 어려움이 늘 생긴다. 상대방들에게 ‘다음 대선’과 여러 잠재적 대선 후보들이 초미의 관심사지만, 나는 솔직히 이 부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물론 박근혜같이 아예 국정을 맡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참사지만, 대체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정책의 핵심은 별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특히 대북정책처럼 정권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바뀌는 부분들도 있다. 한데 종미(從美, 대미 추종)·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기본노선은, 1990년대 중반의 김영삼 시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야 사이에 정권이 두 번이나 교체됐는데도 말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지금도 야당 인사 중에서는 노무현 시대를 황금기처럼 언급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인간이나 정치인으로서의 품격 차원에서는 노무현과 박근혜를 비교할 수 없다. ‘급’이 다른 것이다. 한데 구체적인 정책을 비교하다 보면 대북관계나 역사 관련 시책 등 상징성이 강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 기본노선은 과연 그렇게까지 달랐을까 싶다. 예를 들어 사드 배치와 관련된 결정을 박근혜의 대표적 실책으로 꼽고 있지만, 대북정책 이외에는 노무현 정권 역시 거의 맹목적 종미에 가까운 자세를 취했다. 이제는 거의 망각되고 말았지만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 군부대의 규모는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컸다. 한국은 3600명이나 되는 병사를 범죄적인 침략전쟁의 현장으로 보냈지만,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한 일본은 600명만 보냈다. 종미 정책은 국외뿐만 아니고 국내에서도 다대한 피해를 끼쳤다. 미군 기지가 이전한다고 하여 대추리 농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저항하는 이들을 초강경 진압하느라고 경찰도 아닌 군인을 3천명이나 동원한 일은, 불과 10년 전에, “민주 대통령 노무현” 집권기에 있었던 것이다. 만약 사드 배치 문제가 10년 전에 발생했다면 노무현 정권이라고 해서 미국의 압력에 제대로 저항할 수 있었겠는가?

“민주 대통령 노무현”의 자본과 노동 관련 정책도 놀랍도록 보수적이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챙겨준 대표적인 정책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 한국 시장을 좀더 긴밀하게 해외시장에 종속시킨 각종 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을 자주 꼽는다. 그러나 사실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6년부터 노무현 정권은 100만달러 범위 내에서 국내 기업·개인들의 투자 목적 해외 부동산 구입을 허용하는 등 외환의 국외 반출을 상당 부분 자율화했다. 즉, 한국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벌어들인 돈이 해외로 흘러가 거기에서 비생산적 부문에 투자되는 것을 허용해준 것이다.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회에 전혀 도움되지 않고 지배층의 돈주머니만 살찌우는 비생산적 투자는 정권에 의해 제대로 규제되지 않았다. 그 전이나 후의 다른 정권에 비해 약간 더 사회정의 지향적인 부동산 정책을 썼다지만, 전국 집값은 정권 임기 중에 36%나 올랐고 난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정권 초기에 약 130곳이던 골프장은 정권 후기에 접어들어 약 270개까지 늘어난 것이다. 물론 투기와 난개발을 직접 나서서 지원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정책과의 차별성도 어느 정도 보이긴 했지만, 잉여 자금이 언젠가 무너질 부동산 시장의 피라미드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용인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상 큰 차이가 없다.

자본 친화적 정책의 이면은 바로 반노동 정책이다. 박근혜 정권은 민주 국가에서 전례 없는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으로 세계적 악명을 얻었지만, 노무현 정권도 노동 투사 구속을 유별나게 쉽게 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임기 중에 감옥에 잡혀들어간 노동자는 거의 1100명에 가까워 김영삼 정권 시절보다 두 배나 됐다. 박근혜 정권은 경찰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살인으로 온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무리한 초강경 진압은 노무현 시절에도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하중근(1962~2006) 열사를 기억하는가?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이던 그는, 평화집회에 참석했다가 진압 과정에서 방패로 뒷머리 우측 부근을 가격당해 쓰러진 뒤에 경찰들로부터 어떤 구급조치도 받지 못하고 결국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뒤 뇌사 상태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백남기 살인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지만, 하중근 살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하중근 열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노무현 시절의 비정규직보호법은 비정규직의 수를 거의 감소시키지 못하고, 그들의 권익을 전혀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들처럼 노무현 시절에 노골적인 부당노동행위를 당해도 국가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했던 비정규직은 수두룩했다.

노무현 정권의 종미, 친자본, 반노동 정책을 장황하게 열거한 의도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제도 야당 정치인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만들어도 재벌공화국의 게임룰을 그것만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 돼도 재벌들을 위해 맞춤형 정책 선물을 퍼부어주고 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진압을 시킨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이란 재벌 지배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변화를, 대선과 대통령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변화는 광장이 이끄는 것이다. 광장으로부터의 압력은, 보수적 정권으로 하여금 민중에 다소 이로운 정책을 추진하게끔 강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노태우 정부는 분명히 반민주적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다. 그런 성격임에도 노태우 시절에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고 국민의료보험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고 국민연금제가 처음으로 도입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바로 거리로부터의 지속적 압력, 민주노조 건설과 파업이 자유로워진 공장들로부터의 압력이었다. 정통성이 문제시되는 군부정권이 거리에서 표출되는 여론에 특히 취약할 수 있지만, 정상적 절차를 거쳐 출범한 정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한국에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정권은 김대중 정부였지만, 바로 김대중 시절에 획기적인 복지제도 확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비록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 중에서는 40% 정도만 수혜자가 됐지만 기초생활보장제라는 최초의 생존권 보장 제도가 바로 그때 만들어졌다. 그만큼 1996~97년의 노동계 총파업 등 노동자들의 결사적 저항은 김대중을 포함한 신자유주의 지향적 지도층에 압박을 가한 것이었다.

지금 촛불의 압박은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저항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돼도, 광장으로부터의 압박만이 사드 배치와 같은 자살적 종미 실책을 막을 수 있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가져다줄 수 있다. 광장의 시위대 구호가 청와대에까지 잘 들려야 청와대의 주인이 민심을 그나마 고려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그 주인이 누가 되든 간에 말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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