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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결선투표제와 헌법 / 서복경

등록 2016-12-28 18:33수정 2016-12-28 20:49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최근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관련 헌법 제67조의 해석이 논란이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가, 법률 개정만으로도 가능한가에 관한 논쟁은 오래 묵은 주제다. 헌법을 해석하는 여러 접근이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우선하는 것은 문구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문구 그대로’의 해석이 1차적인 이유는, 헌법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상식에 의해 반복적으로 해석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의 평균적인 교육을 받고 문해력을 가진 시민들이 이해하는 바와 헌법에 대한 유권해석의 간극은 가능한 한 좁아야 한다. 시민들이 스스로 헌법을 해석할 수 없고 매번 유권해석자들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헌법은 현실에 작동하는 규범이 되기 어렵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⑤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67조를 ‘문구 그대로’ 해석해 보자. 대통령은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로 선출하고 대통령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며, 2인 이상의 최고득표자가 나올 때는 국회에서 가리라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 규칙이 무엇이든 간에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원칙 내에서 법률로 정하고, 그에 따라 선거를 시행했는데 ‘2인 이상의 동점 최고득표자’가 나오면 ②를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1회의 투표든 2회의 투표든 동점 최고득표자는 나올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전자나 후자나 가능성 희박하기로는 마찬가지 아닌가? 이 해석에 따른다면, 결선투표제가 ‘헌법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헌법에 대한 ‘문구 그대로’의 해석과 유권해석 간의 차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컨대 국회의원정수 관련 오랜 논쟁을 보자. 현행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하게 되어 있다. 19대 총선 이전까지 ‘200인 이상’ 규정은 299석 초과 제한으로 해석되는 것이 다수설이었다. 299석 이상이 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해석은 정치과정과 입법을 통해 깨졌고, 지금 의원정수는 300석이다. 국민참여재판제도 도입 과정에서도 그 제도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권위 있는 해석자들 사이의 다수설이었다. 국민들이 직접 재판에 개입하는 것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국민참여재판제도 주창자들은 이 다수설과 부단한 논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그 제도는 개헌 없이 법률로 도입되었고, 현재 시행 중이다. 헌법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기관 중 하나인 헌법재판소는, 과거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그 유명한 ‘관습헌법’의 논거로 수도가 서울이 아니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었다. 물론 우리 헌법 어디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조항은 없다.

헌법에 대한 모든 유권해석이 무의미하다거나 오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문구 그대로’의 해석에서 기각될 논거가 분명하지 않으면, 정치적 합의와 제도적 판단의 과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선투표제가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바람직한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으며, 충분히 논쟁되고 합의되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그것이 헌법 67조에 대한 유권해석에 갇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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