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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반교육적 정권의 교육적 공헌 / 황금중

등록 2017-01-02 18:18수정 2017-01-02 19:00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지금 대한민국은 도약 중이다. 시민 각자의 마음에 웅크리고 있던 의로움과 분별의 정신, 연민과 연대와 용기의 기상이 요동치며 뿜어져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과 나가야 할 바를 명철하게 살피는 혜안, 그리고 그 혜안에 따라 필요한 것을 창조해 갈 수 있는 실천의 힘을 체험하고 있다. 전국 광화문의 촛불은 각자의 직장으로 가정으로 이어져, 개인들의 영혼을 감싸던 껍질을 태워 그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사랑과 정의와 지혜의 물줄기를 열어젖히고 있다.

이 현상은, 교육의 관점으로 볼 때, 전국민적 차원의 위대한 자기성장, 자기교육의 체험이기도 하다. 동서양 역사 속의 교육철학자들은 교육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에게 내재한 고귀한 본질, 즉 박애와 의로움과 지성과 용기와 절도의 마음을 밖으로 펼쳐내는 일로 풀이하곤 했다. 육체적 존재인 동시에 영혼의 존재이며, 땅의 존재인 동시에 하늘의 존재인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함께 하늘의 성스러운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 ‘하늘 본성’을 맹자는 하늘의 벼슬[天爵]로도 표현하면서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구체화했고, 플라톤은 이성, 용기, 절제로 정리했다. 역사 속의 교육지성들은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최고 수준의 영혼의 즐거움을 동반하는 지성과 덕성, 창조성, 심미성의 싹이 바로 자신 안에 내재해 있으며 그것을 삶의 현실에 펼치는 일을 교육의 의미로 이해해왔다.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바는 바로 각자에게 내재한 하늘 본성이 깨어나는 교육의 자기체험이다. 우리 내면에 이런 고귀한 정신적 에너지가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라고 감동하면서 또 서로의 것을 확인하며 격려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적 체험은 우리가 마주한 반교육적 정권 덕분이다. 국민의 정신과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갉아먹고 혼돈으로 몰아가는 현 정권의 반교육적 행태는, 잠자고 있던 혹은 숨막혀 있던 우리 안의 하늘 본성을 자극하고 작동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 정권의 반교육적 면모는 집권 내내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지만 그 정점은 역시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6년 대통령 측근 국정농단 사건이다. 핵심 권력층의 특권과 반칙, 거짓, 부패의 횡행 속에서 자유, 평등, 공정, 투명성과 같은 가치는 무너져버렸고, 국민들은 자포자기의 심정도 가지게 되었다. 이 현상은 현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공적 언론의 사적인 정치적 통제 체제 구축, 4대강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공론 및 절차를 무시하는 입법 및 정책 운영, 공공연구기관의 독립성 훼손, 용산참사 등을 둘러싼 비인권적 인식 및 대응, 이른바 일제고사 정책을 둘러싼 비판적 교사 파면, 대선 관련 국정원 댓글 개입 사건 등 지난 정권이 태연하게 벌인 일들은, 소통과 자유와 투명성과 공공성의 가치들을 뒤흔들며 국민의 삶을 혼돈과 자포자기로 몰아갔다. 이제는 잘 정착되어 당연하게 여겨도 좋겠다 싶던 민주적 가치와 질서가 하루아침에 파괴될 수 있다는 자각도 그때부터 생겼다. 현 정권의 반교육성은 지난 정권의 반교육성의 연장선상에서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짙은 어둠은 빛을 잉태한다. 우리가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그 어둠의 경험이 그저 낭비의 시간은 아니었음이 다행이다. 우리 모두가 참된 자신을, 내면의 정신적 자산을 크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 이제 우리의 하늘 본성, 집단지성이 깨어나는 의식혁명의 물꼬는 터졌다. 이 물꼬가 행여 다시 막히지 않도록 열어젖히고 또 열어젖혀야 한다. 정치, 법, 경제, 교육 등 모든 방면에서의 적폐 청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런 절호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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