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통일부에서 주최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공식 인터뷰는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외교관 생활이 엿보이는 세련된 매너로 기자회견을 이끈 태 전 공사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흡사 냉전시대 귀순용사의 만세삼창을 보고 있는 듯했다. 체제에 대한 환멸, 자유라는 탈북 동기, 그리고 통일을 위해 힘쓰겠다는 다짐을 담은 그의 회견문 또한 과거 귀순용사와 놀랍도록 닮았다. 참혹한 ‘북한’과 풍요로운 ‘남한’을 대비하고, 북한 정권의 몰락과 통일 한반도를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남한’의 우위를 증명하는 표상으로 재현하는 귀순용사 서사가 다시금 전면화된 것은 수년 전 일이다. 종편을 비롯한 미디어에서는 탈북자의 입을 빌려 끔찍한 과거의 ‘북한’, 만족스러운 현재의 ‘남한’ 그리고 이상적 미래로 설정된 ‘통일’이라는 메시지를 상당히 공격적으로 유통시켜왔다. 탈북자는 북한에서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를 증언해야만 하고 그 반대로 한국에서의 현재는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를 증명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탈북자는 ‘통일 전도사’로서 남북한 ‘통일’을 보편적 가치인 동시에 유일한 한반도 통합 모델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흥미롭게도 현 정부의 정치적 입장은 이러한 탈북자의 서사와 같은 궤적에 있다. 현 사회의 작동방식이나 기득권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과 시각을 ‘친북’ 혹은 ‘종북’으로 몰아세워 제거하려 한 것이나, 불신의 대상인 북한을 신뢰의 주체인 남한식으로 길들여야 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 대북강경정책,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면 마치 통일, 평화, 번영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담은 ‘통일대박론’ 등은 귀순용사 서사의 귀환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반증한다. 게다가 이러한 탈북자의 서사는 철저하게 내부 결속용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면서, 남한의 현 상황에 대한 비판과 이견에 재갈을 물리고, ‘지금 여기’의 미래를 ‘통일’로만 제한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극우세력이 다시금 ‘북한’, ‘종북’, ‘전쟁위기’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즉, 지금 광장에서 뿜어져 나와 아직은 언어화되지 못한 채 배회하는 이 사회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다시금 기득권의 질서로 퇴행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 북한이라는 과거적 타자를 악마화하고 남한이라는 현 상태를 ‘상대적 낙원’으로 이상화하며 ‘통일’이라는 한반도 미래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배타적 분리와 남과 북이라는 낡은 이분법적 사고체계로 상상할 수 있는 한반도의 미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과거와 현재는 사실 우리의 삶 속에서 조밀하게 엮이어 미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분단 극복은 ‘통일’이라는 정치적 형태가 아니라 남과 북이라는 위계적 서열을 교란하거나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시도에서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다. 남과 북의 서열을 증명하는 탈북자가 아닌, 그 이분법을 탈주하는 새롭고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태영호’를 만나고 싶은 이유다. 우리가 광장에서 몸을 부대끼며 확인하고,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꿈꿨던 수많은 미래상들을 다시금 분단의 공포와 통일이라는 낡은 허상에 탈취당할 수는 없다. ‘지금 여기’ 한반도의 모든 이들이 ‘사람’으로서 존엄하게 사는 것이 ‘국가’보다도 ‘통일’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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