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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우리 회사 민주주의 점수 / 박점규

등록 2017-01-16 18:20수정 2017-01-16 18:52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동수씨는 충남 아산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닌다. 취미는 여행, 낚시, 다이빙. 연월차 휴가를 모아 1년에 두세 차례 해외여행을 떠난다. 롯데제과에서 10년 넘게 일한 세진씨는 청년이 부럽다. 지난여름 가족과 동남아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8개월 전에 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끝냈지만, 회사는 사표를 내고 가라고 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만 보내야 했고 세진씨는 회사를 관두고서야 가족여행을 할 수 있었다.

최강 한파에도 민주주의 촛불이 12주째 타올랐다. 그런데 촛불이 광장 너머 우리의 삶터, 일터에서도 타오르고 있을까? 회사에서 벌어지는 부정비리, 특권과 불평등 앞에서도 광장처럼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을까? 민주주의가 회사문 앞에서 멈춘 건 아닐까?

우리 회사가 민주적인 직장인지 따져보자. 회사 문화, 노동조건, 경영진 책임으로 구성된 열 가지 질문에 대해 각 10점씩 100점 만점이다. ①원치 않는 야근(잔업 특근)을 해야 하는가? ②원할 때 휴가를 쓸 수 있는가? ③상사의 부당한 지시나 하기 싫은 회식이 반복되는가? ④여성,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도 같은 직원으로 존중받는가? ⑤월급이 매년 납득할 만큼 오르는가? ⑥잘릴 걱정을 안 해도 되는가? ⑦비정규직 비율이 동종 업종보다 낮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가? ⑧능력과 경험이 없는 사주의 친인척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가? ⑨회사가 어려울 때 임원이 먼저 책임지는가? ⑩민주적으로 선출된 노동조합이 있는가?

절반 이상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면 괜찮은 회사다. 대다수 항목이 부정적인 회사도 많을 것이다. 열 개 문항 중 제일 중요한 건 뭘까? 중소기업에 다니는 동수씨는 회사에 강한 노조가 있어서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자랑했다. 대기업 롯데에서 법에 보장된 휴가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세진씨는 “회사 노조(어용노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적인 직장, 좋은 일터를 만드는 무기는 ‘민주노조’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복지국가는 노조 가입률이 높고 노조가 강한 나라다. 후진국일수록 자본의 힘이 막강하고 정경유착이 판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박근혜 대통령 이후에도 부패한 지도자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정경유착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시위는 그냥 또 시위로만 끝나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촛불이 막 타오르던 11월 초. 광화문 광장에 걸린 시민들의 소원 중 가장 많은 단어는 ‘공정’이었다. 공정의 반대는 특권. 그런데 정유라의 특권은 분노하면서 이재용의 특권엔 침묵하고, 김정은의 세습엔 분개하면서 정의선의 세습은 용인한 건 아닐까? 지금까지 국민들은 이건희를 존경하는 기업인 1위, 이재용을 차세대 리더 1위로 뽑아왔다.

촛불은 부러움의 대상이던 재벌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재벌체제가 한국 경제와 개인생활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질문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66.4%였고 ‘도움 된다’는 21.8%에 그쳤다. 68.9%는 재벌 3세가 글로벌 경영 능력을 ‘못 갖추고 있다’고 답했다. 천하무적 이재용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건 촛불의 힘이다.

민주주의가 활짝 핀 나라를 만들고 싶어 촛불을 든 당신의 일터에도 촛불이 켜졌으면 좋겠다. 노조 하기가 독립운동만큼 어려운 나라지만 노조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우리 일터의 민주주의 점수를 확인해보고,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고, 노조에 대해 알아보자. 광장의 촛불이 일터에서도 만개하는 2017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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