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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미국을 꿈꾸는 과학도에게 / 김우재

등록 2017-01-30 18:12수정 2017-01-30 18:48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한국 과학자들도 트럼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젊은 과학도들이 그렇다. 지금껏 상아탑 세계에만 관심 있었다면, 이제 자주 뉴스를 읽고 사회가 변화하는 풍경에 익숙해질 때다. 이 글은 미국으로의 이직과 유학을 준비하는 젊은 과학도들에게 쓰는 편지다.

20세기 초, 유럽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산산조각났다. 17세기부터 쌓아올린 과학의 기반도 무너졌다. 유럽이 정체된 틈을 타, 미국이 과학의 새로운 축으로 등장했다.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미국은 유럽 과학자들을 이주시켰다. 미국 정보기관이 이 과정에 깊이 관여했으며, 바로 그 인적 자원이 맨해튼 프로젝트와 같은 거대과학 시대를 가능케 했다. 20세기 과학은 미국이 이끌었다. 따라서 후발주자였던 한국은 미국을 모방했고 철저히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한 사회의 과학은 그 사회를 닮는다. 미국의 과학도 그렇다. 미국 경제가 점차 주기가 짧아지는 공황과 심각한 양극화의 위기에 처해 있듯, 미국의 과학계도 그렇다. 미국에서 과학자는 대학에 고용된 세일즈맨이다. 그들은 연구비를 사냥하고, 대학은 그 연구비로부터 간접비를 얻는다. 과학자들은 거대출판기업이 독점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싣고 이 성과로 연구비를 사냥하는데, 학술지야말로 돈 한푼 안 들이고 돈을 버는 무풍지대다. 세계 과학계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바로 미국형 자본주의 과학이라는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되는 현상이다.

현실은 잔인하다. 미국은 과학자들에게 필수코스다. 그곳에 더 나은 과학과 경력, 그리고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급 두뇌를 훈련시킬 자본도 의지도 없다. 언제나 미국이라는 우방이 유학과 이민을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은 J1 혹은 H1B 비자 등을 미끼로 아시아의 우수한 석·박사 학위 인력을 끌어들인다.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H1B 비자 없이는 구글도 페이스북도 없다. 미치오 카쿠는 H1B를 천재 비자라고 불렀다. 바로 그 비자가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과학계를 유지하는 비밀무기다. 이공계 대학원의 대부분이 이민자로 채워진다. 그들이 영주권을 신청하고 미국인이 되면서 실리콘밸리가 탄생했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된다. 트럼프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미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했고, H1B에 손을 대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는 최소 임금을 높여 기업을 압박하고, 그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체 숫자도 줄일 생각이다. 2017년이 기존 제도가 유지될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좌불안석이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인도와 중국에서 밀려드는 H1B 인력이 없다면, 실리콘밸리도 없다.

미국행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다면 심각하게 재고할 때다. 몇 가지 대안이 있다. 브렉시트가 가시화되는 영국을 제외하고, 영어권 국가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가 있다. 이 국가들은 과학의 기반이 한국보다 훌륭하다. 일어에 능하다면 일본을 추천한다. 일본은 박사 후 과정부터 교수까지 내수로 모두 충당이 가능한 곳이다. 여전히 노벨상도 나오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유럽이다. 영어만 가능하면 유럽 어디서든 과학자로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이제 과학자들도 신문을 읽어야 한다. 한 사회의 과학은 그 사회를 닮을 수밖에 없고, 과학자들은 바로 그 사회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구축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거리로 나선다는 뉴스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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