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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깡패국가’ 미국

등록 2017-02-01 17:25수정 2017-02-01 20:21

트럼프가 앞으로 얼마나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는 당분간 미치광이 트럼프, 깡패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경제, 안보가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우환거리가 생긴 것이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미국은 뭇 세계시민에게 ‘나라 이상의 나라’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동안 한 손엔 총, 또 다른 손엔 달러를 들고 세계의 정치 질서와 경제 질서를 좌지우지해왔다. 미제 문화와 가치관, 미제 학문과 철학은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만사·만물의 우열을 재는 척도였다.

이런 미국이 지금 침몰 중이다. 세계인이 닮고 싶어 하는 ‘매력국가’에서 세계인의 증오를 사는 ‘깡패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열흘여 전,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의 악마적 공약이 너무 빨리 현실화하고 있다. 이미 행정명령에 서명한 미국-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 난민·무슬림 입국 금지 외에,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물고문 허용, 비밀감옥 부활,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 존치, 국제기구 분담금의 대폭 삭감 등의 난폭한 조처들이 줄줄이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자’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미국이 그동안 힘들여 쌓아온 소프트파워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세계의 지도국 노릇을 해온 것은 단지 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는 하드파워 때문만이 아니다. 근육질의 하드파워에 자유와 민주, 개방과 공정을 핵심 가치로 하는 매력 만점의 소프트파워가 속살처럼 더해지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스마트파워 초강국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것이 핵무장에서 미국과 맞먹는 러시아, 경제력에서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을 멀리 따돌리고 미국을 세계 일등국으로 우뚝 솟게 한 핵심 요소다. 하지만 미치광이 트럼프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어온 이런 무형의 자산을 스스로 내동댕이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퇴행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트럼프 취임 전날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일어났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아성인 이 포럼의 주빈으로 초대된 것만도 눈길을 끌 만했지만, 시진핑은 더 나아가 미국 대신 자유무역과 개방경제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개방을 통해 자유무역과 투자를 촉진해야 하며 보호무역주의를 반대해야 한다”며 “보호무역은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는 격”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시진핑의 기조연설 다음날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세계를 향해 “미국 사람을 고용하고 미국 제품을 사라”고 협박했다. 이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과 이미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티피피) 탈퇴를 선언하며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가속했다. 미국과 중국, 트럼프와 시진핑의 역할과 메시지가 바뀌었어도 너무 바뀌었다. 경천동지할 일이다.

여기에 두 번째 기름을 부은 사건이 난민과 무슬림의 입국을 제한·금지한 반이민 행정명령이다. 이미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기로 한 터였지만, 트럼프의 막무가내 폭주가 이 정도로까지 치달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오직 이라크·이란·수단 등 7개 이슬람국가에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축적을 인정하지 않는 폭거다. 더구나 미국은 이민으로 시작해 이민으로 흥한 나라가 아니던가. 이런 만행에 세계 각국의 지도자뿐 아니라 미국의 시민·기업인·관료가 비판·항의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이제 트럼프의 선거 때 막말을 두고 유세 때와 당선 뒤는 다를 것이라든가, 미국은 제도화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므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정신승리법’적인 전망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트럼프가 앞으로 얼마나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는 당분간 미치광이 트럼프, 깡패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이 아니라 ‘미친 나라 미국’ ‘깡패국가 미국’과 거래를 해야 한다. 미국이 기침만 해도 경제, 안보가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우환거리가 생긴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사를 보면, 포용·개방적일 때 흥했고, 배제·폐쇄적일 때 망했다. 결국 미국도 그런 역사의 법칙을 피해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망해가는 강국이 더욱 잔인하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럴 땐 시류를 잘 파악하고 결연한 자세로 국익을 지킬 수 있는 담대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국경 장벽 건설비용 부담 요구에 정상회담 거부로 맞선 멕시코 대통령 정도의 배짱은 기본이다.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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