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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심일 공적과 건군신화 껍질 벗기기 / 최호근

등록 2017-02-13 18:27수정 2017-02-13 18:57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태릉 육군사관학교에는 세 개의 동상이 있다. 안중근, 심일, 강재구가 그 주인공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일제 침략의 원흉을 저격했고, 강재구 소령은 1965년 베트남전쟁 파병 직전 수류탄 투척 훈련 중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했다. 심일은 누구인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첫날과 둘째 날 춘천전투에서 인민군 자주포 여러 대를 육탄으로 파괴한 용사로 알려져 있다. 사실이라면, 참 다행이다. 안중근 의사에서 육사 8기와 육사 16기로 이어지는 호국영웅들의 서사를 우리 생도들이 매일 되새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 심일 소령의 공적이 허위라는 의혹이 연이어 제기된 것이다. 전투 현장에 있던 다수의 전우들부터 당시 대전차포 소대장이었던 심일의 공적을 부정했다. 이에 육군은 이미 1981년에 진상조사를 마치고 심일의 공적을 허위로 결론지었다. 당시 육군본부 인사참모차장이었던 박경석 장군의 증언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후속조치는 없었고, 심일은 그사이에 호국영웅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최고의 전투중대장과 탁월한 육사 졸업생에게 부여되는 심일상까지 제정되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교육부까지 나서 확고한 국가의식과 역사관을 확립하겠다며 국정 역사교과서 누리집(홈페이지)에 ‘전쟁영웅 심일’ 카드뉴스를 대대적으로 게시했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문제투성이의 건군신화 한 자락이 대한민국 건국신화의 초석이 되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경솔한 일인가? 그게 아니라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이로써 심일의 공적 진위 문제는 군의 울타리를 넘어버렸다. 이제는 군 정훈교육이 아니라 국민교육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국민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용이 아니라 사실성이다.

국방부와 군사편찬연구소는 심일이 받은 미국 은성무공훈장 추천서를 공인 사실인증서처럼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서류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신뢰받기 어렵다. 미군 장교가 작성한 이 추천서에는 중요한 첨부서류들이 누락되었다. 내용의 문제는 더 크다. 군사편찬연구소와 의견을 달리하는 육군 군사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천서 진술과는 달리 6월26일 오전 10시경 소양교 인근에서는 전투 자체가 없었다. 전투가 없었던 곳에서 전공이 생겨난 셈이다.

하루 전인 6월25일 옥산포 지역에서의 육탄공격 신화도 의문투성이다. 이대용 장군을 비롯해 함께 전투를 치렀던 다수의 장병이 그 무용담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심일이 대전차포를 버리고 후퇴해서 상관으로부터 큰 질책을 받았다는 증언까지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국방부의 공적조사위원회 구성은 적절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위원회는 단기간의 조사 끝에 마련한 공청회에서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무근이라고 선언하고 말았다. 게다가 군사편찬연구소와 상반된 입장에 서서 합리적 의심과 대안적 설명에 고심해온 육군 군사연구소에 온전한 비판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런 태도가 언론의 신랄한 비판을 초래했음은 물론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국방부는 사태의 조속한 종결을 원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군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시작이다. 과장된 전과, 허위 공적으로 점철된 군 역사를 가지고 우리 장병들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르핀 같은 건군신화가 아니다. 심일 공적 문제는 개인이나 군에 국한된 문제일 수 없다. 한국전쟁 초기 서술과 직결되어 있기에 현대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좌우하는 시금석 같은 사안이다. 신속한 종결 대신에 군과 민간 학자들의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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