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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나쁜 자식들 / 손아람

등록 2017-02-15 18:43수정 2017-02-15 21:11

손아람
작가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승마 특기로 부정입학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남긴 호기 어린 말이다. ‘엽기적 망나니’ 정유라에게 말을 상납했다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향해 핏대를 세우던 장제원 의원은 며칠 전 고개를 숙이고 바른정당 대변인직에서 사퇴했다. “오빠랑 하자” 엠넷의 쇼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출연한 아들 장용준이 에스엔에스에 남긴 엽기적 망나니 같은 언행과 성매매 의혹 때문이다. 장용준은 동서학원의 설립자인 장성만의 손자로 학원 재벌 3세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한화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이자 정유라의 동료 선수인 김동선씨 역시 음주 난동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또 다른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장남의 군내 가혹행위로 인해 구설에 휘말렸다. 남경필 의원의 장남도 지역 족벌 4세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아들의 에스엔에스 실언으로 사과한 전력이 있다.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 작년에는 두정물산의 후계자인 임범준씨가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팝가수 리처드 막스가 직접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사건 피해자인 대한항공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 없었다. 한진그룹 3세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내 난동의 새 지평을 손수 열어젖혔던 탓이다.

‘나쁜 자식들’이 모두 재벌 등 상속 대상자란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수신제가의 문제로 단순히 환원하기는 어렵다. 교육은 세습되는 권력을 길들일 수 없다. 교육은 공리적인 압력이 존재하는 범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삶을 전망하지 않는 자동적인 상속인들에게 시민을 동료로 보는 관점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시민 교양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위선일 뿐이다. 교양은 상속권의 일부가 아니고, 상속을 저지할 법적인 효력도 없다. 동일한 출발선과 공정한 시합을 기대하는 사람만이 시합의 룰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자식들’의 등장은 교육의 공백이 아닌 세습 사회의 병폐로 보아야 한다.

정치적 세습 사회였던 조선 왕조에서도 왕세자의 소양 교육이 늘 문제였다. 조선 왕실을 통틀어 적장자로서 왕위에 오른 왕세자는 7명밖에 안 된다. 자질 시비에서 시작된 정치적 저항이 적통 세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홍문관 부제학 한효원이 적통 세자의 권세가 한없이 높아 방종하기 쉽다며 이른 교양을 간언하는 상소가 실려 있다. ‘미친 왕’ 연산군의 폭정을 겪었던 한효원은 열살에서 열두살의 총명한 어린이를 골라 세자와 항시 어울리게 하며 이들과 세자가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를 금하지 말 것을 간언했다. 나름의 ‘신민 교육’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왕조는 내내 미친 왕세자들에 시달렸다. 왕세자 교양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였다. 세습 직위를 선출 권력이 대체하자 정치인 2세들에게 교양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 생존 기술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걱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인 박지만씨의 마약 남용이 아니라.

‘나쁜 자식들’은 세습 권력이 정치에서 경제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시민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그들의 지나간 망언이 아니다. 앞으로 그들이 갖게 될 힘이다. 돈도 실력이고, 엄마를 때려줄 수 있고, 여성을 돈으로 사고, 상습적인 폭력을 저지르며, 국민을 미개한 존재로 보는 이들의 지배를 우리 사회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뿐이다. 상속을 통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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