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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촛불 이후 진보의 시간

등록 2017-02-15 18:43수정 2017-02-15 21:16

한국 사회의 ‘잃어버린 10년’은 또한 진보정당운동의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 굳어진 상징, 관습, 공식은 이제 모두 재검토의 대상이다. 반면 반새누리당 활동에 치중하다 놓쳤던 것들, 가려졌던 것들, 꺼내지 못한 것들로부터 촛불 이후 진보정당이 할 일들을 찾아내고 구체화해야 한다. 어쩌면 진보정당에도 이번은 마지막 역사적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2017년 2월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판결이 아직 나지 않은 탓이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촛불 정국은 승리한 시민혁명으로 한 매듭을 지을 것이다. 만에 하나 기각된다면, 어떤 예상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글을 쓰자니 몰상식보다는 상식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할 수밖에 없겠다. 이 점 우선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그럼 탄핵 인용 판결 후 우리 삶은 무엇이 바뀔까? 아니, 바뀌어야 할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시간관념에 대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아래서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단지 10년이 길어서만 그런 게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바깥세상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절감하며 나름대로 생각을 가다듬고 사회 세력들을 재배열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요즘 주목받는 ‘제4차(?) 산업혁명’의 여러 양상들이 이때 준비됐다. 이 중대한 전환의 시간 동안 우리는 애먼 강바닥을 파고 승마 선수 한 명을 키웠다.

그래서 촛불 혁명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촛불 혁명 자체가 실은 타성에 젖은 시간관념에 맞선 도전이었다. 사회 전체가 잘못된 길에 빠져든 줄 빤히 알면서도 방향 전환을 다음 선거 때로, 4년 혹은 5년 뒤로 미루던 관성을 더는 이어갈 수 없다는 각성이었다. 그래서 다들 광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바로 지금이 아니라면 길을 되돌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으로 말이다.

이 깨달음이 이제 일상의 규율이 돼야 한다. 우리의 시간은 더 이상 달력이나 일정표의 리듬을 따를 수 없다.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잘못된 길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인 양 매 순간에 임하는 것이 새로운 시간관념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비유만도 아니고, 채근하려는 과장도 아니다. 실제로 나를 비롯해 광장 시민들 중 상당수에게 촛불 이후의 시간은 한국 사회를 바꿀 마지막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는 일상의 누적이 아니라 이런 흔치 않은 기회에 대한 집단적 응답의 드라마임을 우리는 이미 1987년의 경험들로 잘 알고 있다.

여러 사회 세력 가운데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이야말로 가장 앞장서서 이런 시간관념을 체현해야 한다. 오랜만에 변화가 일상이 되어야 하는 때가 도래했으니 늘 ‘변화’를 입에 달고 살던 세력부터 그런 일상의 앞선 사례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오늘(16일)로 끝나는 정의당 대선 후보 경선은 나름대로 이런 시험 앞에 선 진보 세력의 고민을 보여주었다. 후보 중 한 사람은 언론에서 항상 정의당 대선 후보로 가장 먼저 꼽는 심상정 대표다. 다른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강상구 전 대변인이다. 그는 현재 대선 주자로 나선 인물들 중 유일한 40대다. 어느덧 86세대가 한국 정치 중앙무대의 세대 하한선이 돼버린 현실에서 40대 진보 정치인의 출마는 그 자체로 도전이다.

하지만 나이는 상징일 뿐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당내 선거 과정에서 강상구 예비후보가 전한 메시지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진보정당이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데 급급하면서 민주당의 아류 정당 비슷하게 인식됐다는 점을 아프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권교체만 바라볼 게 아니라 그 이후에 진보정당이 어떤 역할을 해야 촛불시민혁명의 뜻을 제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강상구 예비후보가 제시한 길은 진보정당의 과감한 ‘좌클릭’이다.

강상구 예비후보가 내놓은 대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문제들만큼은 지금 이 순간 진보정당이 대면해야 할 고민거리들임에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잃어버린 10년’은 또한 진보정당운동의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 굳어진 상징, 관습, 공식은 이제 모두 재검토의 대상이다. 반면 반새누리당 활동에 치중하다 놓쳤던 것들, 가려졌던 것들, 꺼내지 못한 것들로부터 촛불 이후 진보정당이 할 일들을 찾아내고 구체화해야 한다.

결코 성급한 이야기가 아니다. 촛불 이후 역사의 속도가 어떠할지 예감한다면 말이다. 조금만 멈칫해도 추월당하고 낙오될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의 재정비 속도는 오히려 더욱 빨라져야 한다. 어쩌면 진보정당에도 이번은 마지막 역사적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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