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시민 박근혜의 보좌진이 자유한국당 소속 현직 의원들로 구성됐다. 민경욱 의원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박근혜의 입장을 대변했다. 한 일간지는 ‘정치 9단’ 박근혜 대통령이 ‘불복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정치라는 어휘가 언어적 모라토리엄에 처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입장 대변을 맹렬하게 비판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역시 ‘정치 9단’이라는 수식이 자주 붙던 정치인이다.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정계에 복귀하고, 다시 통합민주당 원내대표로 복당한 뒤 탈당하여 국민의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는 정치 9단 인증을 받았다. 5·16 쿠데타의 주역에서 민주 정부의 총리로 변신하며 역대 최다인 9선 의원을 지낸 김종필씨 역시 ‘정치 9단’으로 자주 거론된다. 자유당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야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 3당 합당을 통해 다시 적통 보수정당으로 복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계 최초의 9단으로 공인받았다. 탄핵소추로 전화위복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도 9단 칭호를 얻었다. 제도권 정치를 시궁창으로 유도한 위험한 발언들이 도리어 승단 시험이 되어버린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마저도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떠났다고 칭송했다. ‘9단’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짐작해볼 만한 대목이다. 정치력 평가에 있어 선거권자는 제로 팩터로 취급되어 왔다. 민중 정치는 불가능한 이상으로 여겨졌고 드라마틱한 공작 정치가 민주정의 동의어처럼 사용됐다. 선거권을 가진 시민들과의 교감능력이 아니라, 끈적한 인맥 관리와 대담한 언론 통제 기술이 곧 정치력의 기준이었다. 정치는 술책으로 치환해도 무방한 단어였다. 선거권이란 게 아예 존재하지 않던 고대 왕조 사회의 엘리트들이 인식하던 정치도 그런 것이었다. 따라서 9단으로 승단하려는 정치인은 “아니 뭐 저런…? 우와 저러고도 살아남았네!”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기적의 생명력을 먼저 입증해야만 했다. 의학의 통제를 벗어나 아홉번씩 재발하는 암도 비슷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9단 승격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모욕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우리 세계의 전환점이다. 8:0 파면 결정은 90퍼센트의 확률 혹은 80퍼센트의 확률로 탄핵 가능성을 예상하며 대응을 준비하던 시민사회를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다. 10퍼센트 혹은 20퍼센트의 미지 변수가 바로 ‘정치 9단’들의 영역이었다. 민주주의의 무중력 지대에 대한 공포를 시민들은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헌재의 전원일치 파면 결정은 법도 정치의 일부임을 확인시켰다. 거리는 텅 비었지만 의사당만이 시끄럽던 지난 탄핵 소추의 결과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8:0을 만들어낸 압력은 법이 아니라 거리를 메운 촛불의 질량이다. 시민들은 법의 엄밀성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조차 사회와 교감하는 시민임을 믿는다. 정치 9단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 경험들은 승단 시험의 규칙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다. 야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제 시민의 눈을 바라보고, 시민을 향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의사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목소리로 ‘국민의 뜻’을 제멋대로 추론하는 대신, 스스로의 생각으로 논쟁하고 평가받을 용기를 갖춰야 한다. 가늘고 길게 가려는 전략을 준비해온 정치인들에게는 안됐지만, 당분간 3단 이상의 선수가 최고 권력에 접근하는 날은 돌아올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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