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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드, 이건 일종의 ‘보험사기’죠

등록 2017-03-17 20:56수정 2017-03-17 22:38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평화가 정책적으론 통일·외교·국방과 관련되다 보니까, 이건 ‘고위 정치’ 영역이라는 인식, 정부나 전문가가 다룰 영역이란 인식이 있지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국가기관이나 외부단체의 지원 없이 300여명의 후원회원이 보태주는 후원금으로 평화정책을 연구하는 순수 민간단체를 18년째 꾸려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평화가 정책적으론 통일·외교·국방과 관련되다 보니까, 이건 ‘고위 정치’ 영역이라는 인식, 정부나 전문가가 다룰 영역이란 인식이 있지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국가기관이나 외부단체의 지원 없이 300여명의 후원회원이 보태주는 후원금으로 평화정책을 연구하는 순수 민간단체를 18년째 꾸려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무실은 추웠다. 손이 곱아서 펜이 자꾸 헛돌았다. 창문 밖에 비치는 봄볕은 투명한 오렌지빛이었지만, 소용돌이 모터를 달아놓은 듯 휘몰아치는 꽃샘바람은 채찍처럼 날카롭게 창문을 후리고 지나갔다. 이런 날씨에 내가 주책이지, 얼음 탱탱 언 호박식혜는 뭐하러 사왔담? 근처 시장에서 사들고 간 식혜는 좀처럼 녹지 않고 페트병째 얼음기둥이 되어 탁자 위에 삐딱하니 세워졌다. 민망하던 차에, 그가 내민 따뜻한 찻잔이 마냥 고마웠다. 찻잔을 핫팩 삼아 언 손을 녹였다.

“추우세요?”

“아녜요. 이제 괜찮아요.”

실내에서도 두툼한 파카를 입은 채 일하는 게 그에겐 익숙한 모양이었다.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45) 대표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민간 부문 안보전문가로 손꼽힌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창립한 이후 지금까지 18년간 줄곧 상임대표로 일해왔다. 정욱식은 최근 <사드의 모든 것>이란 책을 출간했다.

대통령은 탄핵되어 자택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임기 중에 선포한 사드 배치는 권력의 공백 상태 속에서도 속속 강행되고 있다. 제동장치 잃은 시한폭탄처럼 사드 배치 일정은 째깍째깍 진행되고, 한반도를 휘몰아치는 동토의 시나리오는 방향 잃은 봄바람처럼 종잡을 수 없다. 북핵과 사드와 한-미 우호와 한-중 갈등…. 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어디서 보장받을 수 있을까? 사드 배치를 둘러싼 안보 논란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가? 당장 먹고살기 급급한 시민들에게 사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정욱식 대표라면 이 혼란스런 시기, 진영논리를 떠나서 우리에게 믿을 만한 ‘안보교육’을 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화란 ‘누구나 잘 먹는 세상’을 만드는 것

평화네트워크 사무실은 서울 망원시장 입구,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이었다. 창립 이후 열다섯번째로 이사한 곳이라고 했다. 상근자는 정욱식 대표와 성정현 연구원, 단 두명이다. 평화네트워크는 국가기관이나 외부단체의 지원 없이 300여명의 후원회원이 보태주는 월 30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초창기엔 후원회비가 월 30만원 안팎이었고, 다른 시민단체 공간 한쪽에 더부살이를 하다가 친구 자취방을 사무실 삼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간 외부 용역 프로젝트 같은 건 안 하셨나요? 99년 창립이니, 김대중 정부 시절인데.

“정부지원금을 받거나 정부에서 발주하는 연구용역을 맡는 일은 안 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요?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시민단체의 중요한 역할인데 그쪽(정부 용역)에 익숙해지다 보면 지원금을 받기 위한 사업에 맞춰서 활동을 하게 될 것 같아서요. 단체의 정체성을 지키려면 좀 어렵더라도 시민 후원에 의지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재정도 인력도 빈약한 상황에서 놀라울 정도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해오셨어요. 지금까지 낸 책이 몇 권쯤 됩니까?

“세어보질 않아서… 한 열댓 권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반도 시나리오>(2004), <핵의 세계사>(2012), <한반도 시나리오>(2013), <평화학과 평화운동>(2016) 등 단독 저서만 매해 한 권꼴로 낸 셈이다. 그는 요즘도 <프레시안>에 매주 2편의 정기 칼럼을 연재하고 각종 신문기고문을 쓰는 한편, 국민티브이(TV)를 통해 팟캐스트 <진짜 안보>를 진행하고 있다.

-‘진짜 안보’라는 게 뭐죠?

“우리 사회에서 안보라고 하면, 군대와 무기 같은 국방 분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 안보를 위해선 ‘국방’과 함께 ‘외교’라는 또 하나의 날개가 필요하고, 우리처럼 분단된 현실에선 ‘남북관계’라는 요소가 함께 고려되어야죠. 국방-외교-남북관계, 세 개의 축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진짜 안보입니다.”

친가·외가 통틀어 4년제 대학은 처음
뇌종양 진단받고 암흑 같던 시기 보내
북한 대기근 소식 뉴스로 접한 뒤
평화군축운동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만 26살 때 ‘맨땅에 헤딩하기’식 단체 창립

국내 손꼽히는 민간부문 안보전문가
국가기관·외부단체 지원 없이 운영
“정체성 지키려면 후원금만 의지해야”
매주 2편 칼럼 쓰고 팟캐스트 진행
해마다 1권꼴로 단독저서 펴내기도

-‘평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단체는 우리 사회에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평화군축에 대해서 실증적 연구를 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평화정책에 대한 민간연구가 이렇게 빈약한 이유가 뭘까요?

“평화가 정책적으론 통일·외교·국방과 관련되다 보니까, 이건 ‘고위 정치’ 영역이라는 인식, 정부나 전문가가 다룰 영역이란 인식이 있지요. 그리고 평화를 논하려면 아무래도 미국과 한-미 동맹의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이게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져온 탓도 있고요. 게다가 오랫동안 진보진영에서도 ‘평화’보다는 ‘통일’을 중심가치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평화를 독립적 주제로 다루는 데 소홀한 편이었지요. 저희는 친북-반북, 친미-반미 같은 이분법적인 구도를 넘어서서 평화를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로 봅니다.”

-평화네트워크에서 정의하는 ‘평화’란 뭡니까?

“한마디로 정의 내리긴 어렵지만, 평화(平和)라는 한자어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화’(和)자가 벼 화(禾) 변에 입 구(口) 자예요. ‘골고루 평등하게 잘 먹을 수 있는 세상!’ 무기 사들이고 군대 유지하는 데 드는 막대한 자원을 좀더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쓰이도록 하는 게 평화가 아닐까? 그런 평화에 이르는 최소한의 조건은 ‘전쟁의 원인을 제거해 나가는 것’일 텐데, 우린 여전히 그 최소한의 요건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죠.”

“합의문 없어요. 누가 뭐 사인한 것도 없습니다. 그냥 구두상 합의죠. 게다가 현행 소파(SOFA·한미행정협정) 규정상 기지 제공을 한 이후에도 어느 일방이 원할 경우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요.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도 응해야 해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우리 정부가 당당하게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합의문 없어요. 누가 뭐 사인한 것도 없습니다. 그냥 구두상 합의죠. 게다가 현행 소파(SOFA·한미행정협정) 규정상 기지 제공을 한 이후에도 어느 일방이 원할 경우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요.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도 응해야 해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우리 정부가 당당하게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사학위 없는 ‘듣보잡’ 전문가

정욱식은 1972년생으로 서울 신당동 산동네에서 2남2녀의 셋째로 성장했다. 1993년 그가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것은, 그의 가족에게뿐 아니라 집안 전체에 일대 ‘사건’이었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했겠군요.(웃음) 집안의 기대도 컸을 텐데요.

“하하하, 맞아요. 부모님은 제가 고시공부를 해서 판검사가 되길 바라셨지만, 전 언제부터인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가난이 지겹지 않았어요?

“어릴 때는 ‘가난한 행복’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좀 자라선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는 법은 두 가지다’ 생각했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욕심을 버리는 것. 난 후자를 택하겠다고 고등학교 때부터 얘기했고, 부모님은 그런 저한테 많이 실망하셨겠죠.(웃음)”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했다. 고양시 시의원을 하는 아내와 12살 딸, 5살 아들을 키우며 욕심 없이 산다. 아내와 번갈아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보면서, 최대한 낮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이들과 술 한잔 나누는 걸 큰 낙으로 삼는다. 얄팍한 재정으로 단체를 유지하면서 생활비를 감당하기 빠듯할 듯도 한데, 자신은 책을 쓰거나 번역 알바를 하는 걸로 부수입이 생기니 ‘경제적인 어려움은 크게 없다’고 말하며 빙긋 웃는다.

-단체 창립자가 18년째 상임대표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1인 장기집권 아닙니까?(웃음)

“제가 무능한 탓이죠.(웃음) 제가 평화운동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요,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곤 더더욱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럼 뭐 하려고 했어요?

“대학 다닐 때 빈곤 문제,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마 제가 노동야학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은데. 의정부에서 디딤돌이라는 야학을 했습니다. 야학 할 때도, ‘이거 말도 안 된다’ 생각했어요. 대학 신입생이 노동에 대해서 뭘 안다고…(웃음) 그래도 저보다 나이 많은 형, 누나들하고 동료처럼 재미있게 지냈어요.”

대학 3학년 때 인생의 큰 분기점을 맞았다. 원인 모를 두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오진일 수도 있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 당시에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1년여의 ‘암흑 같던’ 시기를 보내고 일상에 복귀할 무렵, 북한의 대기근 사태로 앙상하게 굶주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뉴스로 접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졸업한 뒤 평화군축을 위한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단지를 들고 몇몇 대학을 돌아다니며 함께할 사람들을 구했다.

-아무런 조직적 기반 없이 그냥 전단지로 사람을 모았다고요? 원래 알던 사람들이 아니고요?

“제 친구 한명 있었어요. 나머진 전단지 보고 모인 분들.(웃음) 열명 정도 모였는데 대개 대학원생이거나 직장인들이었죠. 공부모임으로 운영하다가 제가 졸업하면서 단체를 만들자고 했어요. 첨엔 ‘우리가 어떻게 단체를 운영하냐?’고 말리던 분들도 제가 계속 우기니까, ‘그럼 이왕 맨땅에 헤딩하는 거, 외부의 어르신을 대표로 모실 것 없이 그냥 니가 해라!’ 그래서 얼떨결에 시작한 게 18년이 됐습니다.”

-그럼 대학 졸업하고 바로 단체 설립을 한 거예요?

“네. 99년 8월 졸업하고 9월에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했어요. 완전 ‘듣보잡’이었죠. 학교 다닐 때 통일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나타나서 평화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다니니…(웃음) 그때 만 26살이었는데 언론에서는 잘못 들은 줄 알고 36살로 기입하고, 회의에 가면 사람들이 ‘미국에서 박사 하셨어요?’ 묻고요. 제가 좀 겉늙어 보이긴 하지만.(웃음)”

-나중에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를 하셨는데, 왜 박사 과정은 안 하셨어요? 그간의 연구실적으로 보면 박사를 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단체 시작한 지 5년쯤 지나서 석사 과정에 들어갔어요. ‘노후 대비를 위해서’ 학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하도 권하길래. 근데 제가 학업에 성실한 편이 못 되더라고요.(웃음)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리포트 써내는 게 굉장히 피곤하고 재미도 없었어요. 학위가 있어야만 안보 이슈에 발언권을 갖게 된다는 데 대해서도 처음부터 거부감이 있었고요. 박사까지 가면서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하느니 본업에 충실하자 생각했죠.”

‘당신, 펜타곤에서 악명이 높아요’

변변한 연구지원그룹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혼자서 꾸준히 자료를 검색하고 확인하고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오보나 낭설, “장삿속이나 정치적인 의도로” 유포되는 왜곡된 정보들에 대항해 나갔다. 지금까지 그가 낸 수많은 저작물 가운데 허위사실 유포로 법적 소송에 휘말린 적은 한번도 없을 만큼, 그의 연구는 객관적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미국 국방부에서도 ‘악명이 높다’고 하던데, 누구한테 들은 얘깁니까?

“2005년 5월에 워싱턴에 갔습니다. 그때 미국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무슨 건으로 가신 거죠? 시민단체 사람들하고 같이 간 건가요?

“아뇨. 제가 개인적으로 미대사관에 요청을 했어요. 미국 안보 관련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고 싶다고. 알고 보니 미대사관이 저를 ‘주요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서 제가 쓴 글의 상당수를 영어로 번역해 본국에 보고하고 있었더라고요. 미국에 비판적이어도 얘는 좀 잘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는지 뜻밖에도 순순히 비자도 내주고 만남도 주선해줬습니다. 그때 미국 펜타곤에 가서 리처드 롤리스 아태담당 차관보를 만났는데, 그 사람 집무실이 무슨 암실같이 생겼어요. 도청방지 한다고 창문도 없는 방에 딱 들어서니까 ‘당신 여기서 악명이 높다’(You are notorious here) 하더군요.(웃음)”

-안보 분야 연구에선 믿을 만한 정보를 가려내는 일이 특히 중요할 텐데, 평소 정보 수집은 어떻게 하세요?

“아, 이건 영업비밀인데.(웃음) 새로운 내용을 발굴해야 할 때 전 주로 구글 검색을 이용합니다.”

-구글로 한다고요? 대외비 문건이 아니라 온라인에 공개된 자료들을 본다고요?

“예, 작년 미국 정부 예산 보고서의 경우 600페이지가 넘습니다. 그거 출력하기도 힘들고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 안에서 주요 키워드를 가지고 또 검색을 해요. ‘사드,’ ‘레이더’ 쳐보면서 관련된 내용을 뽑아보죠.”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정보를 얻기 위해 극비리에 누굴 만나고 자료를 몰래 반출하고 그러는 건 아니란 말씀이군요.(웃음)

“그럼요. 중요한 건 문제의식입니다. 전문 무기에 대한 판단도 상식의 눈높이로 보는 게 제일 합리적이에요. 지금 사드 배치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레이더인데, 레이더에 관한 상식적 판단은 뭐냐? 레이더라고 하는 기계는 미사일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탐지 범위 안에 일단 들어오면 그게 북한 거든 중국 거든 러시아 거든 탐지추적이 가능한 겁니다. 중국의 오성기가 달려 있다고 해서 레이더가 자동으로 꺼지고 그러지 않거든요. 중국이 민감해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는 거고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서울 망원동 평화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서울 망원동 평화네트워크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드는 무용지물, 애물단지

-말 나온 김에 사드 얘기를 본격적으로 나눠보죠. 중국인의 한국 관광이 뚝 끊기고 중국 수출업체들에 일제히 비상이 걸렸습니다. 정부에서는 사드가 북핵 방어용이고 중국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데, 중국이 이렇게 강경 자세로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사드라고 불리는 요격체계에 포함되어 들어오는 것 중에 ‘엑스(X)밴드 레이더’라는 게 있어요. 이 레이더의 탐지 범위를 미국은 군사기밀이라고 정확히 안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국방부에선 900㎞ 미만이라고 하는데, 제가 찾아본 미 육군 문서에는 탐지범위가 1000㎞ 이상이라고 나옵니다.”

-어떤 문서에서요?

“미 육군의 ‘X밴드 레이더 운용교본’이요. 그리고 펜타곤에 ‘미사일 방어국’이라고 있는데 거기 부서장이 이 레이더의 최대 탐지 범위는 2700㎞라고 얘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2000㎞ 안팎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걸 성주에 갖다 놓으면 거리상 중국 동북부부터 베이징까지 쭉 커버가 되는 거죠.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한·미 양국이 ‘북한을 감시하기 위해서 시시티브이(CCTV)를 설치하겠다’ 하는데 중국 입장에선 이게 자기를 감시하는 ‘몰래카메라’로 보이는 거죠.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한테 ‘야, 이거 너희들 몰카 아니야’라고 입증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걸 만든 것도 미국이고 그걸 운용하는 것도 미국이니까요. 그 레이더는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전략사령부에서 원거리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것도 다 미국 문서에 나오는 얘깁니다.”

-그럼 우린 이 레이더가 어떻게 쓰일지 알 도리가 없습니까?

“성주 사드 기지가 아니라 콜로라도 지하 벙커에서 미국이 통제하는 걸 우리가 알 길이 없죠.”

-‘중국의 오해는 유감스럽지만, 북핵 방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박근혜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면 반경 200㎞ 구간까지 방어가 된다고 얘기했어요. 그 범위 내에 떨어지는 북한 미사일은 다 잡을 수 있다고…. 한마디로 ‘개뻥’이에요. (<사드의 모든 것>에 실린 그림을 가리키며) 여길 보세요. 사드의 요격 범위를 평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사드의 요격고도는 40~150㎞예요. 40 이하나 150 이상 고도로 오는 건 잡을 수가 없단 얘기죠. 그런데 북한이 40㎞ 이하나 150㎞ 이상 고도로 미사일을 쏘는 게 어려운 일이냐?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요. 북한이 최근에 쏜 미사일 고도가 이미 500㎞, 600㎞, 1000㎞까지 올라갔어요.”

-한마디로 네트 아래로도 보낼 수 있고 네트 위로도 보낼 수 있는데 사드의 네트 너비는 너무 좁다는 얘기군요?

“적절한 비유입니다. 파리채 들고 독수리 잡겠다는 거죠. 제가 하도 떠들어대니까 국방부도 이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저고도로 날아오는 건 패트리엇으로 잡으면 되고, 너무 높게 쏘면 비행이 불안정해지니까 북한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예요.”

-북한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희망사항으로?

“그러니까 국방부 해명이 자꾸 꼬이는 거죠. 이건 엄청난 전문지식을 요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초보적인 상식만 갖고도 이게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얘기인지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사드를 빨리 배치하지 못해서 안달일까요?

“(낭패한 표정으로) 그걸 모르겠어요.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해요. 처음엔 미국이 강하게 압력을 가해서 그렇다는 얘기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떠돌았어요.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미국이 그렇게 압박을 가하거나 서두르자고 얘기한 걸 제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박근혜가 작년 초에 기자회견 하면서 ‘사드 검토하겠다’ 그러니까 누구 하나 다른 얘길 못하고 우르르 다 그쪽으로 몰려가는 상황이 된 거죠. 거기엔 여러 가지 루머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비선실세들의 록히드마틴과의 유착설이고….”

-최순실이 관련되었다고요?

“단군 이래 최대 무기 도입 사업이라고 불리는 게 록히드마틴의 ‘F-35’ 사업인데 이게 심사에서 탈락했다가 하루아침에 되살아났거든요. 그 과정에서 최순실의 남편이었던 정윤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명쾌하게 밝혀지진 않았죠. 여하튼 사드 배치를 결정하던 작년 7월7일날 국가안전보장회의 때 국방부 장관은 참석하지도 않았고 차관이 대신 갔는데 회의 안건에도 사드는 없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이건 대통령 결심사항이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를 올리고 바로 통과시킨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검토할 시간도 갖지 않았고 그런 절차 자체도 생략해버렸고.”

전문무기라도 상식 눈높이로 봐야
“기계가 미사일 국적 알아보겠나”
사드 요격고도는 40~150㎞일 뿐
“북한 미사일 다 잡는다는 건 ‘개뻥’,
파리채 들고 독수리 잡겠다는 꼴”

합의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드 합의’
국방부 관리와 미 사령관 발표가 전부
SOFA 규정상 한쪽 원하면 재협상 가능
“맹목적 반미나 숭미(崇美)만큼이나
우리 안의 공미주의(恐美主義)도 위험”

합의문도 없는, 구두상 합의

-사드 문제에 대한 대선후보들 입장이 애매해요. 확실한 찬성이나 반대를 표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미 간의 약속이니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제로 하는 후보들의 경우 이게 찬성이란 건지 반대란 건지….

“정권교체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라서 ‘차기 정부에서 시간을 가지고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확실한 시그널만 표해도, 중국으로선 이후의 한-중 관계를 고려해서 보복의 수위를 조절한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정부에선 사드 배치를 2~3개월 내에 끝내겠다고 서두르고 있으니 더 큰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드 재검토를 하자고 하면 한-미 간 합의를 뒤집는 일이 되지 않습니까?

“국가 간 합의니까 다음 정부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합의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점이 있어요. 국방부 정책실장하고 미 사령관하고 기자회견 해서 발표한 게 전부거든요. 합의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합의문이 없다고요? 한-일 위안부 협정처럼 양국 협정문서가 있는 게 아니고요?

“합의문 없어요. 누가 뭐 사인한 것도 없습니다. 그냥 구두상 합의죠. 게다가 현행 소파(SOFA·한미행정협정) 규정상 기지 제공을 한 이후에도 어느 일방이 원할 경우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요. 한국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도 응해야 해요.”

-그런 재협상 요구 자체가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게 된다는 거죠.

“사드 문제는 우리가 오히려 미국한테 따지고 들어야 할 사안이지, 눈치 살피면서 선처를 구하고 읍소할 사안이 아니에요. 이걸 보험상품이라고 치면, 미국이 제시한 보험약관엔 사드가 북한 핵 미사일 요격에 탁월한 성능을 갖고 있고 중국과 무관하다고 했는데, 사드의 실효성은 의심이 되고 중국과 무관하단 대목도 납득을 못 시키고 있잖아요. 일종의 ‘보험 사기’죠. 정상적인 정부라면 보험약관을 위반한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해야죠. 맹목적 반미나 숭미(崇美)만큼이나 우리 안의 공미주의(恐美主義)도 위험합니다. 미국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왠지 해코지를 당할 것 같은 공포와 불안감. 대표적인 게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죠. 있는 그대로의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미국을 보는 겁니다. 그런 착시 현상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고요. 사실 미국 입장에서도 사드가 전략적으로 미국에 이롭기만 한 건 아니거든요. 미-중 관계를 대결구도로 가져가고, 특히 중국과 러시아를 손잡게 할 가능성이 크니까.”

-사드가 해결책이 아니라면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고르바초프가 유엔에서 한 연설이 있습니다.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야 내 안보가 튼튼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젠 안다. 상대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나의 안보, 나의 안전도 확보된다는 것을!’이라고요. 국방비를 북한보다 30배나 쓰고 있고 세계 최강인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북한의 위협에 이렇게 쩔쩔매는 이유가 뭘까요? 군사적인 수단만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외교적 노력을 통해서 북한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그걸로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여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런 안보관과 정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욱식의 책 <사드의 모든 것> 표지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그려져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처럼 보이는 사드가 트로이의 목마처럼 우리를 파멸시키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잘못된 결정 때문에 안보도, 민생도 다 놓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다.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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