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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한민국은 ‘마을공화국’이다

등록 2017-03-31 20:48수정 2017-03-31 21:17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여민동락공동체’ 대표살림꾼 강위원
지난 22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위원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이사. 강 이사는 인터뷰에서 “어르신들은 단 한번도 시대로부터 존엄하게 예우받아 본 적이 없다. 인간이 존엄을 훼손당하면 어느 순간 야수처럼 변한다. 어르신들은 시대의 피해자들”이라고 강조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2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위원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이사. 강 이사는 인터뷰에서 “어르신들은 단 한번도 시대로부터 존엄하게 예우받아 본 적이 없다. 인간이 존엄을 훼손당하면 어느 순간 야수처럼 변한다. 어르신들은 시대의 피해자들”이라고 강조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대통령을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마마! 용서하시옵소서.”

“억울하고 원통해서 3일을 굶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마!”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향해 큰절을 올리며 흐느끼는 60대들에게 ‘공화국’은 없다. ‘빨갱이는 죽여도 되’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청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없다. 그들에게, 대통령을 몰아낸 촛불시민은 절대자에 대한 충성의 의리를 저버린 배교자들이며, 적화세력에 동조한 매국자들이다. 스스로를 망국의 신민으로 여기는 태극기부대 노인들이 다른 이들에겐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지만, 그들의 ‘충심’엔 절실한 순정이 넘친다. 가짜 뉴스에 환호하고 분개하며 그들은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두 개의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

나와 신념이 다른 이들을 적대하고 배제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면서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적대와 배제의 논리는 촛불의 품격에 걸맞지 않다. 우리가 촛불 이전과 다른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강위원(45)은 새로운 공동체운동의 주체로 노인을 복권시킨 사람이다. 1997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이었던 그는 4년2개월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후, 과거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운동의 모델을 만드는 일에 주력해왔다. 2006년 고향인 전남 영광으로 귀향해서 노인들과 이듬해 마을공동체 ‘여민동락’을 만들었고, 2011년부터 광주 광산구에서 노인들이 주체가 되는 도시형 공동체 ‘더불어락노인복지관’ 모델을 선보였다.

강위원이 생각하는 공동체란 무엇일까? 노인부터 청년까지 함께하는 ‘즐거운 마을’이란 가능할까? 촛불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 좌우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해법’을 찾는 데 그의 경험과 시각이 어떤 단서를 제공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지난 22일 광주로 그를 만나러 갔다.

새 공동체 주체로 노인 복권한
한총련 의장이었던 강위원
2006년 고향 영광으로 귀향해
마을공동체 ‘여민동락’ 만들어
2011년엔 도시형공동체 ‘더불어락’

서류·영수증보다 주민들 관심 중요
경쟁보단 공동체 결속 높여야
시대는 노인들 예우한 적 없다
비용이나 불편한 부양대상 취급
조롱하지 말자, 꼰대에서 원로로!

‘세탁기 복지’로는 안 된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기차로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꼬물꼬물 움트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그가 현재 상근이사로 근무하는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은 광주 송정역 바로 앞이어서 우린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는 사무실에 없었다. 재단에서 공동체 주민사업을 지원하는 ‘볍씨 한톨 공모사업’의 1차 공개심사 원탁회의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그의 사무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구청 행사장에서 그는 응모한 참가자들에게 심사절차를 설명하고 있었다.

“올해로 저희 재단은 4천명이 넘는 주민회원의 기금으로 100% 운영되는, 명실상부한 마을조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모방식도 다른 재단하곤 다릅니다. 할머니나 고등학생도 쉽게 응모할 수 있도록 서류 양식을 한 장짜리로 최소화했습니다. 불필요한 얘기, 어려운 말을 길게 쓰면 페널티를 줄 겁니다. 현장 실사를 중시할 거고요. 참고로 제가 오늘 아침부터 여러 군데서 ‘우리가 지원했으니 눈여겨봐 달라’는 문자와 전화를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 심사위원에서 빠지겠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심사위원 사퇴선언에 장내가 잠시 술렁이는 듯하더니 이내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회의장에서 나온 강위원과 그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민사업 공모하는 데 몇 번 가봤지만, 아주 인상적인 자리였어요.

“관에서 하는 사업엔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응모를 하려면 무슨 법인이거나 단체여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흰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인건비, 운영비 안 받고 회원기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라서, 기준도 저희가 정합니다. 꼭 법인이 아니어도 주민들 몇이 모여서 하겠다는 일이 가치있는 일이면 지원금을 줍니다.”

-자격심사가 따로 없군요. 그래도 괜찮아요?

“신뢰하는 거죠. 서류나 영수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을에서 얼마나 주민들이 이 일에 실제로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가 중요한 척도예요. 저희는 그걸 ‘관계지표’라고 부르죠.”

-관계지표? 그런 게 있습니까?

“저희가 만든 거예요. 수량적 지표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기술하게 해요. ‘처음에 다섯명 모여서 이 일을 했는데 20명으로 마을 활동가가 늘어났다’ 그런 곳은 지속적으로 지원할 가치가 있죠. 마을 안의 ‘관계’가 구축이 되면 지속가능한 기반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복지는 프로그램을 짜놓고 사람들을 모집하는 방식이에요. 1기부터 12기까지 반복해서 돌리는 일종의 ‘세탁기 복지’죠. 한번 빨면 그땐 깨끗한데 더러워지면 또 빨아야 돼요.(웃음)”

굳이 1차 심사를 원탁회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이유도 “다른 마을에선 어떤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지 서로 배우고, 지역에서 사업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주민 간 경쟁보다는 공동체적인 결속력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마을공동체 분야에서 ‘스타급 강사’로 통하시던데요. 1년에 100군데 이상 강연을 다닌다는 기사를 봤는데, 요즘도 그러세요?

“실은, 1년에 200군데쯤 다닙니다.(웃음) 공무원교육이나 복지기관, 협동조합, 주민모임 같은 데요.”

-지난달엔 ‘지방자치대상’에서 주민자치분야 대상을 받으셨죠?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민망합니다.(웃음) 제가 개인적으로 뭘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에요. ‘더불어락’이라고 하는 노인공동체가 자치회를 통해서 복지를 일궈가는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고 해서 준 겁니다. 단체나 기관이 아니라 개인에게 주는 상이라서 제가 받았을 뿐이죠.”

강위원은 2011년 광주 광산구의 운남노인복지관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부임 후 100일간 특별한 취임행사나 업무보고도 거부한 채, 화장실 청소부터 관장 업무를 시작했던 일화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이듬해 더불어락노인복지관으로 개칭하고, ‘더불어락 협동조합’을 만들어 노인들이 직접 북카페를 운영하고 팥죽가게와 두부가게를 만들어 조합원이자 근로자 자격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강위원이 임기를 남겨놓은 채 관장직을 내려놓았을 때 노인들은 눈물을 훔치며 아쉬움을 표했다.

강위원 이사가 지난 22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7년 볍씨 한톨 공모사업 1차 심사’를 앞두고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위원 이사가 지난 22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7년 볍씨 한톨 공모사업 1차 심사’를 앞두고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존엄을 훼손당한 인간은 야수가 된다

-어떻게 하면 노인들과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죠?(웃음) 요즘 태극기부대 노인들 보면서 도저히 깨지지 않는 벽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분들의 세계관이 이해가 되시나요?

“음… 이해도 되고요. 많이 아프고요.”

-이분들이 다 일당벌이를 위해 나왔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제가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사실 태극기 든 어르신들하고 똑같았습니다. 일제시대 언저리에 태어나서 자기 말도 못 쓰다가, 전쟁과 분단 겪고, 가난과 독재 겪고, 칠십 팔십 노후에 섰단 말입니다. 이분들은 시대의 중심으로 살았다고 얘기하지만, 실은 단 한번도 시대로부터 존엄하게 예우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녀로부터도, 국가로부터도 ‘비용’으로 취급되는 존재가 된 거죠.”

-비용이라고요? 돈 들어가는?

“그렇죠. 국가가 고령화사회를 국가적 재앙처럼 이야기하고, 자식들한테도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부양대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지금의 노인복지는 연금생활자마저도 하향평준화시킵니다. 제가 관장으로 부임했을 때, 제일 말썽 많은 노인들이라면서 복지관에서 13명의 ‘블랙리스트’를 보여주더군요. 다 집 있고 연금 받는, 사장님이나 교장선생님 출신들이세요. 이유가 뭘까 했더니 이분들은 사회에서 기관장도 했고 대접을 받던 분들인데, 복지관만 오면 유치원생 취급을 하거든요. ‘한 줄로 서시고요 식판 드시고요, 식권은 끊으셨나요?’ 인간이 존엄을 훼손당하면 어느 순간 야수처럼 변합니다. 어르신들은 자존감을 지킬 여지가 없고요, 시대의 피해자들이죠.”

-그러니 어째야 할까요?

“우리 복지관 모토가 ‘꼰대에서 원로로!’였습니다. 꼰대 취급하지 말고 원로로 예우하자는 거였죠. ‘대단하셨네요 어르신! 어떻게 그런 일을 하셨어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식을 키우셨어요?’ 그들의 자산과 경륜을 존중하니 달라지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노인을 조롱합니다. 정치인들은 경로잔치 가서 ‘짜장면 주고 빵 사주고 입에다 뭐 물려주면 표가 된다’고 여기죠.”

-그런 취급을 받는 덴 노인들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요?

“이분들은 가장 절망적인 시대에 그저 악착같이 살아온 거예요. 우리 세대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악착같이 내 새끼 키워서 경쟁에 이기게 할 생각으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마지막 노후에 이르기까지 자기 삶을 성찰할 기회 한번 없이 인생을 끝내는 거예요. 진짜로 불쌍한 인생이죠. 이건 나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강위원 이사(마이크 든 이)가 지난 22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7년 볍씨 한톨 공모사업 1차 심사'를 앞두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위원 이사(마이크 든 이)가 지난 22일 낮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7년 볍씨 한톨 공모사업 1차 심사'를 앞두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렇게 들으니 끔찍하군요.

“복지관 화장실 한번 가보세요. 소화전 안엔 알사탕 봉지가 있고, 쓰레기범벅입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발끈해서 곧바로 삿대질이고. 어르신들은 규칙대로 안 살아보신 분들이거든요. 반칙으로 뛰어 들어가는 게 상식이죠.”

-편법이나 반칙이 권세와 재물을 모으는 지름길이란 걸 보고 사셨을 테니.

“복지관 식당에 5천만원짜리 공사를 하나 했어요. 한 어르신이 와서 그러세요. ‘관장님, 딱 보니까 천만원은 떨어지겠구먼.’ 깜짝 놀라 ‘뭔 말씀이세요?’ 하니까 ‘다 아는 얘긴데 뭘…. 근데 이윤은 나눠먹어야 탈이 없어요. 나중에 큰일 할 생각이면 혼자 먹지 말고 조금씩 나눠주라구’ 이러세요. 공정하게 일이 처리된다고 믿질 않으니까 뜻대로 안되면 떼쓰고 악쓰고 높은 사람 거론하면서 협박하죠. 구청장 찾아간다, 시장 찾아간다 하면서. ‘어르신들, 왜 그렇게 사세요?’ 내가 얘길 하다 울어버렸어요.”

-그렇게 평생을 사셨는데 바뀔 수 있습니까?

“노인 대상 프로그램이 주로 동적인 거예요. 라틴댄스, 우리춤, 스포츠댄스… 전국 복지관이 똑같아요. 젊은 사람도 그렇게 하면 흥분상태가 돼요.(웃음) 그래서 저흰 좀 더 정적인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요가, 명상, 국선도 같은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민주주의 학당, 자치회 같은 걸 만들어서 토론하는 법도 가르치고.”

-토론이 가능해요?

“엄청 싸우죠.(웃음) 책상도 뒤집어엎고, 그래도 반성하는 게 생겨요.”

-반성을 한다고요?

“일단 목청을 높이지만 얘기 끝에 한마디가 더 붙어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배우긴 배웠는디, 나이 드니까 욱해서 고것이 잘 안된단 말이여.’ 어르신들이 조금씩 자기 분노를 조절하기 시작하는 거죠.”

무학의 한글 모르는 어머니는
늦은 밤 이웃집에 도움주며
가난한 이들 마음 배려했다
감옥 있을 땐 “서약서 쓰지 말라”
다른 이들에겐 “얼렁 쓰고 나가라”

노인들은 교육·계몽 대상 아니다
탁월한 개인보단 공동체가 지혜롭다
사람들 사이 ‘관계력’이 중요

만민공동회’는 재추진, 상설화
촛불 경유하며 새 시민이 등장했다

‘그딴 걸 학교 가야 배운다냐?’

더불어락의 노인들은 이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의견을 조율하고 역할을 배분한다. 강위원의 권유로 ‘지구촌 나눔운동’ 영상을 보고 정기 기부자가 된 이들도 적지 않다. 노인 일자리로 20만원씩 받는 돈에서 5천원, 만원씩 쪼개서 해외의 굶주린 이들을 돕는다. 손주들 이름으로 기부계좌를 열고 기부금 카드를 나눠줄 때, ‘아따! 천하의 아부지가?’ 하고 입을 쩍 벌리는 자식들 앞에서 은근한 미소를 지을 때, 노인들은 더 이상 천덕꾸러기 꼰대나 사회적 ‘비용’이 아니다.

-언제부터 노인세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지금 92살이세요. 제가 영광에서 6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우리 어머니가 47살에 절 낳으셨어요.(웃음) 누가 저한테 ‘노인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물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요. 어려선 어머니가 우주잖아요. 근데 어머니가 한글을 모르신다는 걸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알았어요. 교회에서 마태 부분 펴라는데 어머니가 고린도를 펴놓고 따라하고 있고 목사님이 378장 펴라는데 어머니가 502장을 펴고 378장 노래를 부르시는 거예요. 너무너무 창피하고 큰 산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2학년짜리가 어머니를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제가 어머니를 속으로 얼마나 무시했겠어요?”

-근데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나요?

“어머니가 추수 끝나면, 광목천에다가 쌀 몇 되 담아 가지고 저를 살짝 불러 이웃집에 갖다 주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했어요. 아버지 몰래 교회 헌금한 거 갚으시나 보다 했는데, 스무살 때 문득 기억이 나서 어머니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봤어요. ‘그 집들이 우리 동네에서 자기 땅 한평 없이 소작만 부치고 산 집이다. 추수 때 아니면 우리도 여유가 없으니 못 도와줄 것 같아서 그랬다’ 하시더라고요. ‘근데 왜 꼭 저녁에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하니까 어머니가 그러시데요. ‘막둥아! 가난한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세다. 쌀 몇 되 주면서 대낮에 소문 내면 좋겄냐?’ 제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켰어요. ‘아따, 어머니는 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랬더니 ‘나이 먹으면 세상이 다 가르쳐주지, 학교에서만 그딴 걸 배운다냐?’ 하시더라고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저의 첫번째 각성은 그때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무학이지만 지혜롭고 강인했다. 가난한 살림에 광주로 유학 보낸 아들이 대학입시를 두 달 남겨놓고 전교조 교사 해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다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덜컥 구속이 되었을 때도, 모범생이던 아들이 광주 서석고에서 제적이 되고, 서울로 올라가 식당 배달부, 광장시장 노동자로 막노동을 하며 몇년을 보낼 때도 어머니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가 검정고시를 치고 94년 전남대 국문과에 수석입학을 해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 “네가 언젠가는 큰 효도 할 줄 알았다”고 한껏 기뻐하셨지만, 그가 한총련 의장으로 구속이 되어 4년 넘게 복역을 할 때도 한결같이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총명한 막내아들이라고 특별히 귀히 여기셨겠어요.

“근데요, 제가 교도소 있을 때 시국사범들한테 ‘준법서약서’ 쓰면 내보내 준다고 해서,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울고불고 설득하느라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농약병 들고 오거나 칼 들고 와서 ‘너 그거 안 쓰면 죽어 버릴란다’ 하는 부모님들도 계셨고요. 그때 면회 오신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막둥아, 너 나올 때까지 나 안죽는다잉. 너 거기 있을 때 내가 죽어불먼 네가 형제들한테 을매나 원망을 받을 거이냐. 안 죽을 테니, 뭐 쓰면 내보내 준다 해도 넌 절대 쓰지 마라.’”

-아, 정말요?

“그다음 말에 제가 더 깜짝 놀랐어요. ‘근데 부탁이 있다. 같이 했던 아그들한테는 얼렁 쓰고 나가라 해라. 그 부모들이 얼마나 징허겄냐? 다 니가 책임지고 나온나’ 그러셨어요.”

재정력보다 중요한 관계력

배운 게 없어도 현명하고 강직했던 어머니, 가진 게 없어도 담장 너머로 부침개를 나누던 고향마을의 추억은, 강위원이 관료적인 학생운동에 크게 회의를 품고 좌절했을 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추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 대구의 노인복지시설에서 3년간 경험을 쌓은 그는 2006년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 가족들과 함께 영광으로 돌아왔다.

-그냥 귀농을 한 게 아니라 새로운 일을 벌여볼 생각을 처음부터 한 거군요?

“더 이상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는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의 가장자리, 변방의 삶터로 가서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을 만들고 싶었죠.”

영광에서 그는 노인복지공동체 ‘여민동락’을 결성하고, 모시송편을 빚어 파는 마을기업을 세워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마을대동회와 마을학교와 협동조합식 이동점방을 만들었다. 지난 2월엔 여민동락의 역사를 기록한 책 <기적 아닌 날은 없다>를 출간하며 10주년 마을잔치도 벌였다.

-여민동락을 통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모든 아이디어와 사업은 오랫동안 거기 살아오신 분들에게서 나온 겁니다. 그분들은 교육과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능력을 갖고 있어요. 엘리트들이 잠깐 현장 둘러보고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공동체는 탁월한 개인보다 지혜롭습니다.”

-여민동락, 더불어락, 투게더재단 모두 공동체운동을 표방합니다.

“복지공동체, 교육공동체, 경제공동체 같은 말들은 행정용어에 불과해요. 삶터에서는 그렇게 구분될 수가 없죠. 공동체가 우선이고 그 안에 교육, 경제, 문화, 복지가 다 담기는 거죠. 국가에서 이웃 할머니를 돌보는 방식은 가사도우미를 채용하고 파견해서 월급을 주는 건데, 우리 복지재정이 워낙 빈약하니 절대적 규모를 확대할 필요는 있지만, 가난한 이웃의 고난을 돈으로만 해결할 순 없어요. 재정력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 사이의 ‘관계력’을 키우는 겁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게 아니라 마을단위에서 이웃이 이웃을 보살피고 그들이 주체가 돼서 해결해 나가도록 지원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강위원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수천 수만의 마을공동체로 이루어진 ‘마을공화국’이다. 국가는 마을의 연방이어야지, 마을을 지배해선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소망은 5·18 반세기가 되는 2030년 안에 광주를 세계적인 시민자치의 모범으로 우뚝 세우는 것이다. 얼마 전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한 ‘생활인모임’도 만들었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한 일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후보 초청 만민공동회였다.

강위원 이사(왼쪽)가 재단 사무실에서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위원 이사(왼쪽)가 재단 사무실에서 이진순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만민공동회가 무산된 이유

-광주시민 1000명이 모여서 민주당 대선후보 초청토론회를 기획했는데 무산되어 아쉽습니다.

“어느날 단톡방에서 보니, 대선후보별로 패가 갈려 싸우고 있더라고요. 광장에선 하나였는데 이렇게 갈라지고 마는가, 암담했어요. 그래서 동학혁명 때처럼 100명의 접주를 모집해 보자고 했죠. 이틀 만에 107명이 모였고 그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 1000명을 모았죠.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최대한 배제한다는 원칙으로요. 후보들 일정을 확인해서 3월15일로 날을 잡고 접주들 1인당 만원씩 돈을 내서 염주체육관도 예약했어요.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일으켰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체육관 중앙에 5·18 민주광장 분수대를 재현해서 지름 5.18m짜리 무대를 만들고, 후보 네 명이 선 채로 정견발표를 할 수 있게 했고요. 시민 천 명이 ‘광주시민의 10가지 질문’을 뽑기 위해 구글독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어요. 촛불의 민심을 이어받아 ‘광장’과 ‘제도’(정치권)가 만나는 만민공동회로 만들고 싶었지요.”

-근데 왜 무산된 거죠?

“처음엔 흔쾌히 올 것처럼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오락가락하다가 문재인에 이어 안희정 후보도 못 온다는 통보를 해왔어요. ‘일정상 못 가서 미안하다’고 했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중간에 오가는 말로는 ‘그 시민들이 광주를 대표하고 있냐?’ 뭐 이런 얘기가 나왔다고 해서 무척 당혹스러웠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정치토론회를 하자고 하면, 정당 입장에서 오히려 고마워하고 축하해줘야 할 일 아닌가요?”

-아쉽네요.

“만민공동회를 하기로 한 날, 긴급히 접주모임을 했어요. 한명 한명씩 다 돌아가면서 토론을 했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이렇게 폭발적으로 시민들이 모일 줄은 몰랐다. 촛불 이후에 선거판으로 정치가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는 데 다들 공감했어요. 대선 전에 반드시 재추진할 거예요. 그리고 이런 만민공동회를 상설화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시장 뽑을 때 동네별로 이런 판을 만들어서 시민이 직접 질문하게 하고 응답을 듣자고요. 이런 것이 진짜 시민혁명 아닙니까? 정치권은 이런 데 화답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선거 때 표만 찍고 나오는 정치소비자가 아니라 촛불 때처럼 시민적 능동성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자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촛불을 경유하면서, 정치 무기력증이나 정치 혐오를 넘어서서 정치가 얼마나 내 삶에서 중요한지 깨달은 ‘새로운 시민’이 등장했어요. 이런 시민의 특징은 맹목적으로 자기 의사를 남한테 위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굉장히 직접민주주의적인 인간들, 어떤 권위나 위계에 쉽게 승복하지 않는 시민 주체죠. 기성정당이 이들을 담아내지 못하면 시민들 스스로 새로운 실험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죠.”

강위원은 오는 5월21~22일 광주시민의 날에 열릴 ‘금남로 시민정치페스티벌’에서 ‘시민총회’ 총감독을 맡았다. 지역별, 직장별로 100여개의 민회를 구성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의제별 토론을 벌이고, 시민의 제안이 조례가 될 수 있도록 전문가 지원단도 꾸릴 계획이다. 봄의 꽃망울이 남쪽에서부터 터져 올라오듯, 새로운 시민정치의 열망이 남쪽에서부터 개화하고 있다.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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