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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가장 불편한 차별 / 손아람

등록 2017-04-12 18:43수정 2017-04-12 20:36

손아람
작가

계단 공사를 의뢰했다. 노트 위에 설계도면을 그려서 보여주는 금속공의 손에 시선을 빼앗겨 도면은 눈에 들지 않았다. 볼펜은 부실하게 시공된 철강 지지대처럼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엉성하게 끼워진 채 덜렁거렸다. 둘째마디 위로 손가락이 달려 있지 않았다. 견적이 예산을 초과했지만 일을 맡겼다. 그의 손가락을 의식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장애는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과 완전히 동등하게 대한다. 꽤 불편한 일이다. 나는 장애를 원인으로 차별받은 적은 없지만, 늘 장애의 결과로 차별받는다. 왜냐하면 내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사고로 청력을 잃은 게 아니라 청각 신경이 없다. 기형이라고 할 만한 심각한 장애다. 이 장애로 인해 내 세계 경험은 보통 사람과 완전히 달라졌다. 양쪽 귀가 듣는 소리의 시차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소리의 방향과 공간감을 알지 못한다. 스테레오도 모자라 5.1채널을 찾는 오디오 애호가들과는 달리, 나는 스테레오 음악을 모노 젠더로 변환시켜야 헤드폰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는 왼쪽 자리에 앉으면 듣기 평가를 제대로 치를 수 없었고, 여러 번 사정을 설명해도 부주의하게 왼쪽에서 말을 거는 사람들은 상당히 성가시다.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기에 나는 십대까지 인간의 왼쪽 귀는 원래 기능이 없는 줄 알았다. 전화통화를 할 때 수화기를 양쪽 귀에 번갈아 대는 행동은 듣기 싫은 말을 회피하는 제스처로 이해했다. 장애를 인지한 건 학교에서 청력검사를 받았을 때였다. 금속진동음을 들으면 손을 들어야 하는 검사였는데, 내가 왼쪽에서 나는 소리에 끝까지 반응하지 않자 교사는 장애가 아닌 장난으로 여겨 체벌을 가했다. 그날 오후 대학병원에서 왼쪽 청각신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상 세계가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깨달은 순간이다. 부모님은 펑펑 우셨고, 전과 달라진 게 없었으므로 나는 슬퍼할 도리가 없었다. 양쪽 귀로 듣는 감각이란 무엇일지 잠시 신비한 상상에 사로잡히긴 했다. 그 뒤로도 나를 장애인이라 놀린 친구는 없었고, 나는 스스럼 없이 장애를 밝히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쉽게 잊는다.

의학이 발달해서 이제 왼쪽 귀로 들을 방법이 생겼다. 의사는 귀 안쪽에 인공 달팽이관을, 귀 바깥에 전기신호기를 장착하는 인공청각 이식을 권유했다. 망설임 없이 거부했다. 수술이 성공한다면 내 장애는 눈에 보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로 인한 주된 불편이 시각적인 것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 장애를 껄끄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두개골 안으로 삽입된 건전지가 달린 기계를 머리통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기 전까지는. 만약 왼쪽 눈동자가 없었거나, 왼쪽 새끼손가락이 없었거나, 왼발가락이 여섯개였다면, 기능적으로 훨씬 사소한 장애일지라도 살기에는 더 불편했을 것이 틀림없다.

평등이란 약자의 핸디캡에 대한 기능적 보상과 인격체로서의 동등한 대우를 뜻한다. 이걸 거꾸로 이해한 사람은 약자가 극복할 수 없는 동등경쟁을 강요하고 인격적 비하를 일삼으면서 역차별을 쉽게 거론한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귀찮아도 내 오른쪽으로 돌아와서 말을 건네주되 두개골 안에 달팽이관이 으스러진 끔찍한 괴물을 상상하면서 귀머거리, 라고 조롱하지 않기를 늘 바라왔다. 논쟁에서 나에게 으깨진 상대방이 역차별을 주장하며 내 오른쪽 귀에 대고 말하기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단 한 번도 그게 이기적인 요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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