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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변호사, 의사, 그리고 검사 / 김우재

등록 2017-04-24 18:38수정 2017-04-24 19:07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국회의원 출마 자격이 있는 4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은 헌법과 국가의 주권을 수호하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 위 사항에 특별히 위배되지 않는다면 성별/지역/나이/직업에 상관없이 대통령에 출마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정치가 일상에서 건강하게 펼쳐지는 사회라면, 대통령 후보군은 국민의 표본을 반영할 것이다. 통계란 그런 것이다. 조작과 선별이 없다면, 선거로 뽑는 정치인의 표본은 국민 전체를 닮아야 한다.

현실은 통계학을 거부한다. 유력한 대권후보 5인 중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은 4:1이다. 여전히 여성은 과소대표되어 있지만, 정치의 성평등은 꾸준히 나아지는 추세다. 미국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다. 지역색이 옅어진 선거지만, 여전히 경상도는 독보적이다. 5명의 후보 중 4명이 경상도에서 태어났다. 40세 이상이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지만, 후보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다. 물론 누구나 늙는다. 나이는 자연스레 극복되는 생물학적 조건이다. 가장 심각한 불평등은 직업에서 찾아야 한다.

지지율 상위권 세 후보의 전직은 변호사/의사/검사다. 길에서 세 명을 골라 그 직업이 변호사/의사/검사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 인구 1000명당 법조인의 수는 약 0.17명, 의사는 1000명당 1.8명이다. 즉, 유력한 대선 후보 세 명이 법조인과 의사로 채워질 확률은 1000분의 2밖에 안 된다. 한국 정치의 구조가 이렇게 기형적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격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집단은 경상도에서 태어난 중년 남성으로, 직업이 의사나 법조인인 사람들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특히 법조인은 기형적으로 과잉대표된 직업이다. 노무현, 문재인, 박원순, 이정희, 강금실, 이회창, 홍준표, 나경원, 오세훈, 유명한 정치인 대부분이 법조인이다. 20대 국회 법조인은 49명으로 국회의 약 16%를 차지하고, 그 비율은 계속 증가 중이다. 이는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여당은 검사당, 야당은 변호사당이다. 이들은 약 600배 정도 과잉대표된 직업군이다. 즉, 한국의 권력은 법조인들에게 있다. 한국 경제의 문제가 재벌에 집중된 양극화라면, 한국 정치의 문제는 우경화나 소모적 대립이 아니라 법조인에게 집중된 권력이다.

의사와 법조인은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중은 그들에게 표를 준다. 이들이 보유한 특권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얻어진 것이다. 마치 조선의 과거제도처럼, 이들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굴곡 없이 기형적이고 안정적인 사회적 특권을 보장받아 왔다. 정치에 관한 한, 우리는 조선시대에서 단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을 얻은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그들이 우리의 삶에 공감할 정치인이 되리라는 기대는 도대체 어떤 근거를 지닌 걸까.

우리의 대선은 왜곡된 정치구조가 만들어낸 특권층의 권력게임이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이들에 의해 다시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자신이 누려온 특권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자격을 심판해야 한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약속받아야 한다.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의사나 변호사가 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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