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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자유한국당의 야당열전 / 김남일

등록 2017-05-02 18:41수정 2017-05-02 19:31

김남일
정치팀 기자

한국 정당 정치사에서 분열과 통합, 이합집산의 야당사는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많다. 반면 여당은 숨길 게 많아서인지 밋밋하고 재미가 별로다. 최고권력 내부의 암투가 중심이니 줄 잘 서 배지 달던 이들의 역사라는 게, 있어도 그저 그렇다. 남들 죽는 거 보고 자기 마음대로 쓰는 전두환·이순자류 5공필법이 득세하다 보니 정사 편입은 아무래도 언감생심이다.

반백년 여당의 후손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비유승민계 의원들이 요즘 100일 속성으로 정통 야당사를 배우고 있다. 후생가외라. 탈당과 창당, 분당과 재입당의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야당사는 명분 싸움과 인내의 기록인데, 이들은 “친북·종북·좌파 정권 저지”가 명분이다. 쑥과 마늘 먹고는 못 사는 상고시대 이야기라 정사 편입하기 민망하다. 그러고도 대선에서 이기겠다니, 기전체로 따지면 여당본기 대신 야당열전의 주인공이나 하겠다는 심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래서 여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가장 존경한다는 이가 50년 전 춘추필법으로 쓴 여당본기 한토막의 일독을 권한다.

“또다시 낡은 매카시즘 수법으로 사상 논쟁을 일삼으려 하는지 모르나 우리는 상대할 흥미조차 없다.” 1967년 5월3일, 공화당 박정희와 신민당 윤보선이 맞붙은 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5월 장미대선은 예나 지금이나 색깔론으로 붉었다. 선거 이틀 뒤 개표 결과가 나오자 검거바람이 불었다. 구속된 이는 당시 사상계 사장이던 장준하 등 야당 인사들이었다.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지명수배가 떨어졌다. 대통령선거법의 허위사실유포죄가 적용됐다.

선거운동 기간 윤보선의 찬조연사로 나선 장준하는 이렇게 말했다가 서울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박정희씨는 자기 사상을 갖지 못한 사상적 방랑아다. 사상에 있어 아주 희미한 사람이다. 여수·순천 반란사건 때 이상한 정치사상을 가졌다.” 그러니까 자유한국당의 할아버지뻘 되는 공화당에서 이런 “매카시즘적 사상 논쟁은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공화당이 거처한 사상의 지평이야 뻔했다. 다만 실제 남로당원이었고 여수·순천 반란사건에 관여해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의 행적을 물고 늘어지는 야당을 비난하다 보니 21세기 자유한국당도 가지지 못한 사상의 고래가슴이 된 것이다.

박정희를 향한 사상 검증은 1963년 5대 대선 때도 심했다. 오죽했으면 첫 지방 유세지로 광주에 내려간 박정희가 이렇게 울분을 터뜨렸을까. “대통령 권한대행이며 최고회의 의장인 나를 빨갱이로 모는데,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 하물며 말 못하는 백성들이 눈에 거슬릴 때 빨갱이로 몰아버릴지 어떻게 아는가!” 부산 유세에선 이렇게도 말했다. “내가 빨갱이라면 어째서 그들 치하에서 육군 소위로부터 소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으며, 전방 사단장도 하고 야전군 참모장도 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사단을 몰고 이북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할 뻔했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런 분노의 인터뷰도 했다. “나는 지금 테러를 당하고 있다. 이 나라의 원수인 나를 빨갱이로 몰아치니… 아무리 정권도 좋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니 이게 공산당 수법과 다를 게 뭔가? 내가 빨갱이라면 이 나라가 2년 동안 빨갱이 치하에 있었단 말인가?”

정작 윤보선은 대구 수성천변 8만명이 운집한 자리에서 “여순 반란 사건에 박정희가 관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질적 사상의 소유자”라고 소리쳤다. 이 모든 일이 어찌나 어색하냐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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