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것은 ‘전쟁 포기’를 명시한 9조 때문이다. 평화헌법 70년을 맞아 일본 우익은 이 헌법을 바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의 압도적 다수는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한다. 보수우익은 60년 넘게 9조를 철폐하려 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왜 그럴까.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헌법 9조가 일본인의 ‘무의식’에 뿌리박고 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헌법 9조의 ‘전쟁 포기’는 무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식적인 설득이나 선전으로는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헌법의 무의식>에서 후기 프로이트의 ‘초자아’ 개념을 끌어들여 이 무의식의 구조를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1차 대전의 참상을 겪고 난 뒤 인간 내부에 죽음충동이 있음을 발견했다. 죽음충동은 바깥으로 표출될 때 공격충동이 되는데, 이 공격충동이 외부의 더 큰 힘에 막히면 방향을 바꾸어 인간 내부로 향한다. 이때 형성되는 것이 초자아다. 초자아란 공격충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무의식적인 힘이다. 전후 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이 초자아 형성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해 압박하고 일본 내부에서 이 압박에 응해 스스로 ‘전쟁 포기’를 선언한 결과가 헌법 9조라는 얘기다. 헌법 9조는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무의식적 초자아, 곧 양심이다. 이 초자아는 설득이나 선전으로는 없앨 수 없다.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일본 국민의 헌법 9조 지지가 굳건하다 보니 개헌파는 9조를 놔두고 다른 조항들을 먼저 개정하려 한다. 헌법 9조의 정신을 무력화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수작이다. 그러므로 전후 헌법 자체를 수호하는 것, 다시 말해 과거를 지키는 것은 일본 시민들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제다. 9일은 투표로써 낡은 과거와 결별하는 날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가라타니 고진은 헌법 9조는 무의식의 문제이므로 선전활동으로는 없앨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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