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팀장 검찰 수사가 한 시절 불꽃 튀는 연애와 비슷하다면, 법원 재판은 긴 시간을 두고 이어지는 결혼생활과 닮았다. 압수수색과 소환, 체포, 구속으로 이어지는 끈질긴 구애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내용도 언제나 새롭고 충격적이다. 반면 재판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주요 쟁점은 연애 때 한 번쯤 서로 다퉈본 내용이라 어디서 본 듯하다. 진행의 역동성이 떨어져 지루하고, 기간도 길어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은 ‘결혼생활’보다 ‘연애’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럴듯한 연애사가 터지면 시시콜콜한 선물 내용, 밤늦은 통화와 문자까지 다 까발려 알린다. 정작 결혼 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별 관심이 없다. 1심 또는 2심 판결에서 파경이 오면 잠깐 주목하다가 그뿐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는 기자들을 향해 “제발 수사 때 보여준 관심의 반만이라도 재판에 보여달라”고 비판한다. 마치 아내한테 “결혼한 뒤 변했다”고 야단을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이 어찌 됐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원 전 원장은 2013년 6월 기소됐지만, 놀랍게도 4년이 다 되도록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독자들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재판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길 권한다. 정권이 꺼리는 사건의 결론을 바꾸고 최종 선고를 미루려는 법원의 ‘꼼수’를 엿볼 수 있다. 또 세상의 무관심 속에 원세훈이 ‘국정원법은 어겼지만 선거엔 개입하지 않은’ 국정원장으로 역사에 남으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될 것이다. ‘국정농단’ 재판이라고 다를까. 아직은 재판이 시작되는 ‘허니문’ 기간이라 덜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연애 때와 달리 서서히 멀어지는 중이다. 1심이 끝나고, 다시 2심, 3심…, 위기는 시간이 한참 흘러 권태기가 시작될 때 찾아온다. 파경을 노리는 그들의 조용한 반격은 더 치열하고 집요해질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24년 전 지역감정을 조장한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법정에 선 경험이 있다. 당시 그는 자신을 옭아맸던 법조항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해, 재판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신공을 발휘했다. 그 자신이 법의 속성을 꿰뚫는 ‘법비’(법을 악용하는 도적)라는 별칭을 가진데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고위직 법률가들이 도처에 깔렸다. 이번 재판에서도 그는 자신을 “여론재판의 희생양”으로 규정하며,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수억원대 전관 변호사들을 앞세운 장차관들, 그리고 정유라한테 줬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변호사비로 쓰게 될 이재용 부회장 등도 ‘탈출구’가 열리길 기다릴 것이다. 맘에 드는 변호사에게 의존해 부인만 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차라리 순진하다. 지난 연말, 우리는 촛불을 들어 검찰을 움직이고, 선거도 앞당겼다. 정치·경제의 최고 권력이 구속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평생 한 번 경험하기 어려운 화끈하고도 고통스러운 연애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새 정부의 첫날이다. 연애는 끝났어도, 이어지는 재판에서 우리는 그동안 사귀었던 이들의 민낯을 마주해야 한다. 재판이 한없이 길어지더라도, 잊지 말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삼성 로비 담당 사장이 나라 전체 공무원의 감사를 총괄하는 이의 인사를 쥐고 흔들었다는 증거를,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볼 일이다. 우병우 전 수석이 법원의 그물을 어찌 피해가는지도 함께.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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