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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제19대 대통령께 / 손아람

등록 2017-05-10 18:21수정 2017-05-10 21:25

손아람
작가

유리병에 접어넣은 편지를 바다 위에 띄워 보내는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각, 아직 투표는 완료되지 않았고 출구조사 결과도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펜을 든 건 이 유리병이 어느 대륙에 가닿을지 이미 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됐군요. 문재인 대통령께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저는 선거기간 동안 위태롭게 흔들렸던 대통령의 좌표에 불안과 의혹을 느낀 시민 중 한 명입니다. 깊은 눈망울과 신중한 언어에서 당신의 선량한 마음을 어림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건 정치인을 판단하는 목록에서 제가 의식적으로 지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께서는 그런 태도를 ‘전략적 모호성’이라 표현했습니다. 동의까지는 아니어도 그것을 택해야만 했던 당신의 입장을 상상해볼 수는 있습니다. 거칠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만 했던 시민들의 입장도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표심의 압력에 떠밀려 모호한 정치적 포즈를 취했듯이, 시민들도 표심의 압력을 가하기 위해 단호한 정치적 목소리를 낸 것이니까요. 다음 5년 동안 우리 사이에서 그러한 정치적 줄다리기가 몇 차례 더 일어날 것을 예감합니다.

그러나 후보로서 사용했던 전략의 유효기간은 끝났습니다. 그게 득표 전략이었다면 말입니다. 이제 당신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입니다. ‘전략적 단호성’을 보여주실 차례입니다. 시민들은 당신이 이뤄낼 적폐 청산의 개혁을 보기 위해 지난겨울을 촛불로 밝혔습니다. 그 촛불 아래서 시민들은 재벌을 개혁하라고 외쳤고,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을 개혁하라고 외쳤고, 당연한 권리를 침해하는 낡고 불합리한 제도들을 개혁하라고 외쳤습니다. 단호한 대결을 단 한 차례라도 피한다면 불가능한 임무들입니다. 대통령이 보여주실 개혁의 힘이야말로 시민들이 이 나라에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유일한 절대권력입니다.

선거기간 대통령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지지율의 덫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후보 지지율에서 국정 지지율로 이름만 바뀔 뿐입니다. 대통령께서는 권력의 안정을 위해 개혁을 연기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자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40퍼센트를 간신히 넘긴 당신의 득표율을 떠올리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낮은 득표율이 개혁의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합니다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당신은 역사상 가장 충성스러운 지지 세력을 가진 대통령이자, 역사상 가장 폭넓은 적대 세력을 가진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은 이런 뜻입니다. 당신에게 등돌릴 사람보다 당신을 향해 되돌아설 사람이 아직 더 많이 남아 있다는.

대통령께서는 이제 전략적 모호성을 빌리지 않고도 헌법의 보호 아래 임기를 방어해낼 수 있는 지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비적인 태도로 당신의 삶까지 방어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임기는 찰나이지만, 기록으로 넘어간 삶은 훗날 당신이 갖게 될 위대한 봉분이 땅밑으로 닳아 꺼지고 그 위에 잡꽃이 피어날 때까지 남아 있게 될 테니까요. 작가인 저는 냉정하거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당신의 가장 부끄러운 실수와 자랑스러운 업적을 그 기록에 덧붙일 것을 맹세합니다.

어쩌면 다음 5년은 절벽에 다가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단 한 번의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그 기간 동안 대통령께서는 “개인의 삶이 아닌 역사를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남긴 말입니다.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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