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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대화의 ‘적절한 환경’ / 박병수

등록 2017-05-14 18:25수정 2017-05-14 19:12

박병수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앞길에는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중 10년 가까이 방치된 북핵 위기의 해결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 과제다. 한반도 문제가 북핵 문제로 온전히 환원될 순 없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진전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도 한계가 있다.

북핵 문제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북한은 이 문제를 북-미 대결 구도의 맥락에 올려놓고 있고, 미국은 북핵 문제를 세계 비확산체제 차원에서 보고 있다. 북한과 미국 모두 우리의 발언권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성도 보여준다. 그러나 10여년 전 6자회담의 경험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 북-미 간 협상의 촉매제 구실을 할 때 결실이 맺어졌음도 보여준다.

물론 북핵 문제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올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북한은 그동안 핵실험을 5차례나 했고, 헌법을 개정해 핵 보유국임도 명문화했다. 10년 전 입에 달고 다니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남북간 군사 대결은 더욱 격화됐고, 긴장은 훨씬 높아졌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더 강력해졌고, 외교적 해결 동력은 거의 소진됐다. 그렇지만 6자회담도 1994년 제네바 합의의 폐허 위에서 몇 년간의 암중모색 끝에 다시 구축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달 ‘고강도 대북제재로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최고의 압박과 관여’ 정책을 내놓은 뒤 한반도 주변 공기에는 새로운 탐색의 기운이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달 27일 “미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나 체제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고 공언하며 북한을 안심시켰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적절한 환경”을 전제로 북-미 대화 의지를 밝혔다. 북한의 공식 반응엔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다. 지난 1일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전면적인 제재압박 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의 핵억제력 강화 조치도 최대의 속도로 다그쳐질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14일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 대화 제안에 대한 전면 거부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진의를 떠보려는 의도에 무게가 실린 게 아닐까. 실제 미국과 1.5 트랙 대화에 참여했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13일 귀국길에 미국과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탐색의 기운이 실제 대화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여전히 북-미 간 입장 차이는 크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확인을 ‘적절한 환경’으로 여기는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화 가능성은 정면충돌하는 이 두 입장에서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대화가 끊긴 동안 북핵의 고도화만 진행된 지난 10년간의 경험은 외교적 해법 이외에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 마땅찮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이유는 체제 불안 때문이다. 핵이 없어도 안전하다고 느껴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궁극적으로 분단체제 극복 과정과 맞물려 있다. 남북간 화해와 협력, 교류의 확대가 북핵 문제 진전의 여지를 넓혀 준다. 또 북핵 문제 진전은 다시 남북관계 개선을 추동한다. 이런 선순환구조 구축에 새 정부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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