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만두노총 새우만두노조가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연 ‘아무깃발 대잔치’에 참가한 ‘혼자온 사람들’, ‘민주묘총’, ‘주사맞기캠페인운동본부’ 등의 깃발이 시민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환호’(acclamation)는 ‘만장일치’를 선포하는 행위다. “모두 동의하십니까?” 물었을 때 단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박수와 갈채 등으로 적극적 동의의 뜻을 밝히는, 바로 그런 행위다. 그리스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 이 말은 서양에서 각종 의식이나 공공 행사에서 주로 어떤 권위의 부인할 수 없는 정당성을 확인하는 데 쓰여왔다. 9~11세기 비잔틴제국에서 황제나 고위 성직자에 대한 축사를 군중이 따라 부르는 형식의 음악적 전통이 ‘애클러메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오기도 한다.
어떤 정치철학자들은 ‘환호’로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적인 한 사유를 발굴해냈다. 애초 실체가 묘연한 ‘인민’이 한목소리를 내는 순간, ‘주권자’로서 그들의 의지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그런 사유에 담긴 대표적 이미지다. 여기서 ‘환호’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치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강렬한 체험이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인민의 공적 의지로서 ‘일반의지’ 개념을 발견한 장 자크 루소(1712~1778)지만, 이를 치명적 논쟁거리로 만든 것은 “인민의 의지는 자명하고 부인되지 않는 현존, 즉 ‘환호’를 통해서만 표현된다”고 주장한 카를 슈미트(1888~1985)다. 그는 ‘토론에 의한 정치’(자유주의)는 껍데기라 비판하고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정치’(민주주의)를 강조했는데, 점차 정치적 지도자(대통령)의 결단을 중시하는 쪽으로 흘러 비판을 받았다.
‘촛불혁명’은 주권자의 의지가 실체로서 모습을 드러낸 ‘환호’의 순간이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집권 초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하는 등 의미 깊은 행보들로 박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 그 자체만 ‘환호’의 대상이 된다면 ‘촛불혁명’은 끝내 미완으로 끝난다. 많은 사람이 ‘촛불 이후’를 깊이 고민하는 이유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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