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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섬의 정체성과 해저터널 / 허호준

등록 2017-05-23 18:10수정 2017-05-23 19:03

허호준
호남제주팀장

“흙을 치마폭에 담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설문대 할망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흙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할망이 곱게 치마를 내리자 흙은 타원 모양으로 내려앉았다. 그곳이 바로 제주도가 된 것이다.”(<제주도 여인상>, 1998)

1만8천 ‘신들의 고향’ 제주도의 신화 속 설문대 할망은 거대한 창조의 여신이다. 그는 하늘과 땅을 손으로 벌려 만들고, 제주도를 만들었다. 흙을 주무르며 360여개의 오름과 동굴과 산도 만들었다. 신화 속에는 그가 육지와 제주를 잇는 다리를 놓겠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설문대 할망은 몸집이 커서 속옷을 변변히 입어보지 못했다. 도민들에게 명주 100동(1동은 50필)을 모아 속옷을 한 벌만 만들어주면 육지까지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도민들은 힘을 다해 99동까지 모았으나 한 동이 부족했다. 결국 육지와 다리로 연결하는 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섬’ 창조신화의 백미인 설문대 할망의 신화는 ‘섬’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날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낙연 전 전남지사는 전남~제주 해저터널 건설 추진에 앞장서왔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1월 폭설로 제주도가 고립되자 성명을 내고 “제주공항 마비 사태로 전남(목포)~제주 간 해저터널을 통한 서울~제주 간 케이티엑스(KTX) 개통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그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저터널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국토의 접근성 개선과 효율적 활용, 광주·전남 관광 활성화를 통한 지역발전, 제주의 기상이변에 대한 대안, 건설업계의 도약 전기 마련 등이 추진 이유다.

전남도와 지역 정치권의 해저터널 건설 요구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난해 9월에는 여야 국회의원 91명의 서명으로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 조기 완공 및 목포~제주 해저터널 건설 촉구 결의안’이 제출됐다. 이 결의안은 상임위 심사단계에서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해저터널 부분이 삭제됐다.

지난 3월엔 정부의 제4차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에 전남~제주 해저터널 사업을 전남지역 대선 핵심 공약으로 포함해 달라고 정당과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등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오는 8월에는 이 후보자가 도지사 재임 시절 추진한 제주~목포 고속철도 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가 나온다. 전남도는 이를 토대로 정부에 정책 건의를 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제주도는 없다. 제주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해저터널이지만 전남에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해저터널 건설에 따른 막대한 환경적 부담과 함께 역사, 문화, 생태 등 고유의 섬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한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등이 반대하는 이유다. 원희룡 지사도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2010년 내놓은 타당성 용역 결과를 보면, 전남(목포)~제주 해저터널은 총길이 167㎞(목포~해남 지상 66㎞, 해남~보길도 교량 28㎞, 해저터널 73㎞)에 건설 기간 16년, 총사업비 16조8천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재판이자 망국적 토건사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전남~제주 해저터널에 대해 “2012년 대선 당시 ‘다시 4대강 같은 대규모의 토목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있었다. 제주에서는 제2공항이 우선이어야 한다”며 해저터널 건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후보자가 총리가 된 뒤에도 해저터널을 계속 추진할지 궁금하다.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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