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진보 정권이 돌아왔다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대학. 예술노동 착취를 막기 위한 입법 과제를 강연한 뒤 질문을 받았다. “착취당할 거 뻔한데 예술가 된 사람이 잘못 아닌가요?” 낯선 경험이 아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자신이 샌더스와 비슷하다 말했고, 조기숙 교수는 새 정부가 프랑스 68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신좌파 정부’라 주장하며, 반대로 여당이 ‘급진좌파 정당’이 됐기에 이제 ‘중도좌파 정당’인 노동당을 지지하겠다거나, ‘신자유주의’는 보수지만 ‘리버럴’인 자신은 진보라는 누리꾼을 본 적도 있다. 좌표가 뒤엉킨 5차원 정치공간에 온 것만 같다. 이번 대선은 보수표 합산이 역대 최저였던 선거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의 정치 성향은 꾸준히 진보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 통계는 응답자들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평가한 답안을 바탕으로 작성됐음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 캠프는 설문조사에서 ‘당신은 투표할 때 인종을 고려합니까?’라는 질문과 ‘당신의 이웃은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으려 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선 모의투표에서 청소년들은 압도적으로 문재인, 심상정 후보를 지지했고 홍준표 후보는 군소정당 수준으로 몰락했다. 지난 지방선거 모의투표에서도 청소년들은 진보 도지사를 훨씬 선호했지만, 가까운 거리의 정책권자인 교육감 선거에서는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고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더 보수적인 교육감을 선호하는 경향마저 보였다. 마치 보수라는 단어에 학을 뗀 보수주의자들이 명찰만 바꿔 달고 보금자리를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수정당이 사라져도 보수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보수주의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유권자 이동에는 문화적 압력이 크게 작용한다. 새 세대 유권자들은 뚜렷한 정치 성향을 갖기보다 망가진 기성세력을 응징하자는 호소에 쉽게 끌린다. 그들은 보수를 자처하는 노인들의 완고함에 질려 있고, 보수 정치인의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조롱하며, 그들과 한 묶음으로 취급되면 창피함을 느낀다. 이들은 진보, 좌파, 개혁을 기치로 내건 젊은 정당들로 흩어져 눈에 띄지 않게 두터운 지지층을 형성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경멸하거나 페미니즘을 적대하거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은 언제나 윤리적이라는 목소리를 정당 지지자의 이름으로 낸다.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처럼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깨닫지 못한 채로. 이러한 유권자 행동심리를 연구한 토드 로저스는 투표를 정치행위가 아닌 사회적 표현행위로 재규정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정당들은 양적 팽창에 들뜨기 전에 미래 설계를 준비해야 한다. 유권자 이동은 장기적으로 연쇄적인 대이동을 야기하며 정당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변수다. 중위 지지층의 무게중심 이동이 파악되면 선거를 거치며 정당의 정책 좌표 역시 끌려가고, 그러면 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지지를 철회하고 떠나게 된다. 유권자 대이동이 끝난 뒤 정당 지형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미국 민주당이 대공황기 추진한 뉴딜 정책은 흑인을 중심으로 경제적 약자인 유권자의 이동을 촉발했다. 불만을 품은 민주당 내 극우 그룹이 공화당으로 갈아타면서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민주당은 ‘변질’됐고 20세기 중반부터는 공화당과 자리를 완벽하게 교환했다. 그리하여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공화당이 아닌, 노예해방을 저지하고자 내전마저 불사했던 민주당에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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